[향토문화]3백년전 발견..신창리 도구리할망굴(성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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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3백년전 발견..신창리 도구리할망굴(성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6.11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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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용암 주석과 용암종유, 찰흔, 용암선반 등 분포..길이 몰라

신창리 도구리할망굴(성굴)
 

시 대 : 미상
유 형 : 전설유적(천연용암동굴)
위 치 : 한경면 신창리 신흥동 마을안

 

 


이 굴은 오래전부터 생겨있는 것으로 약 300여 년 전 이곳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후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입구는 신창리 신흥동 마을 가운데 있으며 작은 입구들이 주 공동을 따라 산재한다. 주 공동은 북서쪽으로 마을과 국도 12호선을 관통하여 용당리와 용수리 방향으로 기동하고 있다.

입구는 천장의 함몰로 형성되었으며 입구에서 남동쪽 선단부로부터 대형 용암 주석과 용암종유, 찰흔, 용암선반 등이 분포한다.

벽면 쪽 바닥에는 소규모의 용암수로, 코핀(coffin=관, 널) 현상 등 2차 용암의 유입 증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북제주군 문화유적분포지도)

전해져 오는 말에 의하면 당초에는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었고 그 안에는 물이 흐르는 소리와 빨래 방망이 소리가 울리어 나오고 저녁이 들 무렵에는 도구리(통나무로 만든 빨래통)에 할망이 빨래짐을 가득지고 나와서는 "강덕이 머들"(동리입구 속칭)로 가서 빨래를 말리곤 했다는 것이다.


가뭄이 있을 때에도 이 굴 안에서는 언제나 물이 흐르는 소리와 빨래 방망이 소리가 들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가뭄 속에 물을 갈망하던 차에 이 굴 입구를 뚫어보기로 하여 구멍 암반을 터뜨렸을 때 안개 같은 구름이 솟아오르고 물소리는 점점 끊어졌다는 것이다.


그 후로는 도구리를 쓴 할망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굴 안에서 물이 흐르는 자취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고 뚫린 암반에는 장수 발자취가 하나 있었고 "강덕이 머들"길 한복판 위에도 장수 발자국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발자취마저 희미하게 사라졌다.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굴 가까이 가면 "도구리 할망"이 나오니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여 지금도 "도구리 할망굴"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개와 고양이를 보냈는데 고양이는 한라산 중턱에서 나와 들고양이가 되고 개는 바닷쪽 굴로 가서 차귀도 앞바다 물개가 되었다는 전언도 있다.

그 후 차츰 사람의 모험으로 횃불을 들고 들어가 보았더니 바닷쪽 굴은 약 800미터까지 가 볼 수 있었고 산 쪽 굴은 500미터까지 가 볼 수 있었으며 바다쪽 굴에는 입구에서 200미터 지점부터는 굴 한복판에 20미터 둘레의 석주(돌기둥)가 형성되었으며 산쪽 굴에는 입구에서 300미터 지점에 15미터의 둘레의 석주가 생겨 있어서 옛날 물이 맴돌며 흐르던 자취가 바닥암반과 굴벽에 자취를 남기고 있으며 "돌병풍"이 늘어붙은 현상은 기묘하기만 하다.


여름 장마가 지나면 굴 안에서 샘물이 솟아오르고 소들도 무더운 여름철에는 아무리 먼 곳에 있다가도 이 굴을 찾아 뛰어 들어 피서를 했다고 한다.(마을 정보센터)

마을 사람들이 입구에 둥근 계단을 만들었고, 입구의 남(위)쪽으로는 속으로 들어가 보면 블럭을 이용하여 벽에 붙여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마을 아주머니의 말을 들어 보니 무를 저장하기 위해 며러 해 전에 설치한 것이었다고 한다.

입구의 아래쪽으로는 큰 비가 오면 길에서 물이 들어 흐르기 때문에 아무런 시설도 하지 않았다. 끝까지 들어가 보지 않아서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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