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처연한 폭낭 신목..판포리 축일본향(숭물할망당,숭무할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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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처연한 폭낭 신목..판포리 축일본향(숭물할망당,숭무할망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6.12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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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머님이 드렸던 정성을 알고 있을까?

판포리 축일본향(숭물할망당,숭무할망당)

 

시 대 : 미상(조선-)
유 형 : 신당
위 치 : 한경면 판포리 중동 동남쪽 100m지점. 찾아가는 길 - 판포리 마을회관 → 중동마을 끝 우회전 100m → 남쪽 100m 지점 나무군락지

 

 

 

수령이 오래된 당폭낭이 있다가 어느 해 태풍에 꺾인 후 지금은 그리 오래지 않은 팽나무가 지키고 있는 판포본향당은 일명 '숭물할망당'이라고도 부른다. 제단은 시멘트로 축조하였다.

1973년 당시 당에 관련된 사무를 보던 총무 진씨 할머니가 주변을 정리하여 시멘트로 1m 정도 제단을 만들었다.(제주의소리 2011.05.31. 장혜련 글) 제단 왼쪽 나무에 지전물색을 걸었다.

'김씨할망'은 판포 본향신이며, 금악 할망당의 큰딸이다. 제일은 丑日이며, 제수는 육류도 쓰고 메는 3그릇 올린다. 돼지고기는 적으로 올리고, 쇠고기가 있을 때는 쇠고기로 올린다. 바닷고기는 구어서 올린다. 당이 따로 없는 월령리 사람들도 이 당에 다닌다.

본풀이에 따르면 당초 하르방당과 부부지간이었으나 할망이 얘기를 밴 때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 돼지털을 뽑아 냄새를 맡은 것이 별거하게 된 사연이 된다.

그 때문에 최근 까지도 판포에 와서 돼지를 사가는 사람은 돼지의 귀를 끊거나 머리털을 뽑아 할망당 쪽을 향해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판포 본향당 본풀이


널개 축일본향 짐씨할망광 오일본향 정씨하르방이 처음에 부부간으로 혼인입장을 시켜줬는디 하루는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니 돗괴길 먹구정 허연 통시에 간 돗술을 하나 매연 콧궁기에 질르난 먹은간씬간허난 남펜이 부정허댄 살렴을 갈르고 할으방은 하늬바람 펜이 좌정하고 할망은 마바람 펜이 좌정하니 이 오일할으방당에 자손들이 가젱 허민 돗괴기도 아니먹곡 정성해사 갑니다.<한경면 용당리 男巫 이자영님>


판포리 본향당 본풀이

<축일당>하로산또로 내(來)하여오신 김씨할망 본도한집님, 호적차지, 장적차지, 인물도 생척한 한집님 쌀로 받곡 한 달에 두시번씩 축일로만 상을 받는 큰낭, 큰돌 차지한 한집님.<한경면 판포리 女巫 양공선님>


널개(板浦) 본향은 축일본향(丑日本鄕) 짐씨(金氏)할망, 오일본향(午日本鄕) 정씨하르방이우다. 채얌에 할망과 하르방이 부부간이 뒈였는데, 호(아래아)른 부인이 유태(有胎)를 호(아래아)젼 돗궤기 먹구정 난 통시에 간 돗솔(豚毛)을 하(아래아)나 메연 콧고망더레 찌른게 먹은간 씬간 허영게 남펜(男便)이 들어오란 부정(不淨)하(아래아)댄 허연 살렴을 갈르고, 하르방은 하니보(아래아)름 펜의 좌정(坐定) 하(아래아)고 할망은 보(아래아)름 알로 좌정허연 돗궤기(豚肉)받읍네다.


=널개본향은 축일본향 김씨 할머니와 오일 본향 정씨 할아버지입니다. 처음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부부간이 되었는데 하루는 부인이 유태(임신)를 하여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서 변소에 가서 돼지고기 털을 하나 뽑아 콧구멍에 찌른 것이 먹은 듯이 한 것이 남편이 들어와서 부정하다하여 살림을 가르고, 할아버지는 하늬바람 편에 좌정하고 할머니는 바람 아래로 좌정해서 돼지고기를 받습니다. - 『무가본풀이사전』(진성기, 1991)


제주의 본풀이에는 이렇게 돼지고기 부정에 대한 금기가 나타난다. 대개는 여성이 돼지고기 털을 뽑아 콧구멍에 찌르거나, 산돼지의 발굽에 고인 물을 빨아먹었다는 식으로 표현 되는데 돼지고기가 정확히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밝혀진 바 없으나 신화적 해석으로는 간음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는 학자도 있다. 신화는 시대를 반영한 산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부장제적 세계관의 한 측면을 읽을 수 있다.(제주의소리 2011.05.31. 장혜련 글)


판포리 할망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신목이라고 할 수 있는 '폭낭'이다. 바닷가에서 조금은 떨어진 곳이라 그렇게까지 심한 바람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도 심하게 구부러졌을까? 우리 선조들의 삶의 굴곡처럼 느껴져 처연하다.


밑둥에서부터 뻗은 가지가 많은 것도 신기한 일이다. 보통의 '폭낭'은 2m 정도는 수간이 올라간 다음에 가지를 뻗는데 이 신목은 밑둥에서부터 다섯개의 가지를 올렸다. 그들이 모두 수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굵은 가지는 적고 잔가지들도 아주 짧게 붙어 있어 어쩌면 '폭낭'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남들과 다른 것은 남들과 다르게 살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당의 다른 이름이 '숭물당'이라 했는데 필자의 고향동네에서는 '숭물'이 숲이 우거진 바위너설 즉 요즘 뜨고 있는 말로 '곶자왈'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곳도 옛날에는 숲이 우거지고 바위가 많았던 곳인가 짐작해 본다.


구석에 박혀 있던 낡은 가는대구덕(제물구덕)을 보니 옛날 아낙네들이 정성스런 제물을 담고 가서 치성을 드리는 장면이 저절로 눈에 선하다. 그 어머님의 정성으로 자란 자식들은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들은 어머님이 드렸던 정성을 알고 있을까?

아직 깨끗한 지전과 태양열에 녹아 흘러내리지 않은 양초는 며칠 전에도 단궐이 다녀갔음을 뜻한다. 엊그제 다녀간 어머님은 또 무엇을 소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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