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지독한 인권유린..태흥3리 모자쌍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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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지독한 인권유린..태흥3리 모자쌍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6.28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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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 잘못 만나서 이런 일 당한 거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 마이소."

태흥3리 모자쌍묘

태흥3리 모자쌍묘

위치 ; 남원읍 태흥3리 이사무소 옆 일주도로에서 서쪽으로 200여m(도로 위에 이정표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농로로 들어가서 200여m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150m 지점 공터
유형 ; 무덤
시대 ; 대한민국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4 3 당시 집단으로 희생된 어머니와 4명의 자녀가 2개의 봉분에 묻혀있는 묘이다.

4 3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된 한 가족의 기구한 죽음에 대한 내력은 듣는 이 들의 눈물을 쏟게 한다.


1948년 12월 17일 중문면 중문리에서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경찰 토벌대에 의해 학살되었다. 그 장소는 일제시대 신사터였으며 지금은 중문 천주교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 양성하(42세, 호적명 양두정)의 부인과 4명의 자녀도 같이 희생되었다.


양성하는 일본에서 배운 침구업으로 생활하다가 1947년 2.7사건 이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토벌대는 양성하의 남은 가족들을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감금하였다가 이 날 무차별 학살한 것이다.

양성하의 가족으로는 부인 오병생(40대)과 양정원(스스짱), 양창학(겐짱), 양만강(민짱),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물애기 등 5명이다.

이들은 10세, 8세, 5세, 2세 등 10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희생자 오병생씨의 남동생인 오봉남(85)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문리엔 정계생이라고 얼굴이나 알앙 인사나 하는 정도로 조금 친한 사람이 있어서,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그 분이 말해줘서 찾아왔주. 요디다 핸 가리켜 줭, 파오긴 했는디. 그 사람들 멫십명을 한 곳에 묻어부난, 거 가릴 수가 있나. 어떻게 알아서 찾았느냐면, 옷으로. 일본서 와서 얼마 안 될 때니까, 계(털실)옷으로 아이들 모두 입져나시난 그걸로 찾았주."


"어린 아이는 그 지경 사람들 말이 '어디 총이나 칼이나 안 맞아실 거우다' 했는데, 어멍 등에 업혀 있는 것을 꺼냉 보니까, 첨 어디 한 방울도 총 맞아난 자국은 없고. 영행 업으민(앉아서 아기가 목에 무등타는 형태) 영 아이가 머리 위로 올라왔어. 그 땅 속드레 팍하게 흙 씌울 때까지도 그 아이는 살안 이섰댄. 큰 아이들은 다 총 맞고.


그 열 살난 아이가 얘기하기를 '우리 네 오누이 중에 하나만 살려 주시오. 네 사람 중에 한 사람만 살려주시오' 하니까. 그 때 경찰관들이 뭔 말을 하는고 하니 '너 이제 누구를 의지해서 살거냐'고. 경 행 쏘아 죽였다는, 그 지방 사람들이 하는 얘길 우린 들었주."


이들 5인의 시신은 학살된 장소인 중문리 신사터에 방치되었다가 6개월 이상 지난 후에야 수습해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오봉남씨의 부친과 매형, 고모부가 시신 수습을 한 후 마차에 나록짚으로 덮어 태흥리로 왔다고 한다.

중문리 집에 들러 보니깐 침 놓는 기구들과 세간을 하나도 없이 다 가져가 버리고 모기장 하나만 남아 있어서 그 모기장에 시신들을 싸고 태흥리로 왔다고 한다.


시신을 싣고 나오려는데 중문에서 경찰서 경위가
"시국 잘못 만나서 이런 일 당한 거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 마이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개의 무덤을 조성하여 하나의 봉분에는 어머니의 시신을, 또 다른 봉분에는 4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묻어 비명에 죽어간 한 가족사의 비극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망자의 여동생인 오임생 씨가 살아 있을 때는 아무도 몰래 까마귀 모른 제사를 지내다가 양성하의 직계 가족의 없는 관계로 제사는 끊겼고, 현재는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오종옥 전 리장 등 조카들이 벌초를 하고 있다.

공유지 한 켠에 비석도 없이 두 개의 봉분에 나란히 묻혀 있는 모자쌍묘는 4 3당시 자행되었던 지독한 인권유린의 기억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한라일보 2007년 4월 24일)



김석교의 시를 소개한다.

태흥리 모자쌍묘 앞에서
김석교
큰아들 열 살 정원이
총 맞고 흙구정에 떨어져 목숨 끊기면서도
어머니 등에 매달린 두 살 막내 살리려고
"제발 이 아이만 살려 줍서."

"제발 하나만 살려줍서." 애원할 때
"의지해서 살 사람이나 있냐?" 토벌대 또다시
미친 총질로 정원이 숨통 끊어버리고
이미 숨소리 멈춘 둘째 창학이, 셋째 만강이, 어머니
볼락볼락 숨 붙은 막내까지
다섯 모자 위로 읅 들이부어 덮어 버렸지/

그렇게 정원이네 죽어간 지 여섯달
남원에서 정원이 외할아버지
중문까지 소달구지 끌고 먼 길 걸어와
흙구덩이 파내고 딸, 손자 유골 찾아내고
이미 다 썩어 누가 누군지 모르는 시신들
모기장 두른 채 숨 죽이며
밤길 걸어온 곳, 남원읍 태흥3리

주인 없는 공유지에 돌담 두르고 묘를 만드니
어머니 묘 하나에 네 오누이 합장묘 하나
그렇게 다섯 가족의, 모자쌍묘
이제는 과수원이 되어 버린 곳에 덩그라니
묘비도 없이, 사람들 그 사연을 알지 못하는
태흥리 모자쌍묘
무자년 한 가족 몰살사를 누가 알까
하늘과 바람, 시간과 역사만이
무덤 속에서 울고 있는 그들을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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