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연의 자식.. '어머니 제주'의 자연을 지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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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의 자식.. '어머니 제주'의 자연을 지켜주십시오”
  • 고현준
  • 승인 2019.07.01 16: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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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하프코스 걷기)제주올레 7코스 법환포구-월평마을, 물이 넘치는..정겹고 아픈 길

 

대한민국 최고라는 대학에 다니던  미술학도 K에게 그의 스승인 한 교수가 말했다.

“자네 시에 그림을 그려줄 수 있겠나..?”

“네,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시를 받기 위해 시인을 만난 그 미술학도는 그 시인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시인의 한사람이자 단아한 한복을 입고 그를 만나는 그 자태에 반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

그래서 그는 매일 그 시인에게 정성스런 사랑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첫 사랑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이 교수가 그 미술학도를 다시 불렀다.

교수 앞에 앉아있는 K의 눈앞에는 그동안 그가 시인에게 보낸 편지가 수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교수가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사실 그 시인은 내 부인일세..”

 

그 교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조각가였고 그의 부인 또한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유명 여성시인.. .

그때 그 미술학도 K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그곳에 들어가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한다.

 

올레를 찾아가는 차안에서 난전선생이 전해 준 이야기다.

 

6월의 마지막 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우산을 손에 들고 올레길에 나섰다.

무려 2개월 만에 밟아보는 올레.

올레길이 그리워서였을까..

가는 곳곳 인동초 참나리꽃 선인장 황근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올레길을 빛내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걸려 덥지도 않은 날씨..

예보대로라면 12시부터는 비가 와야 하는데 비는 한두 방울 내리다 말다만 몇 번 반복했다.

우산을 쓸 일도 없어 상쾌했다.

 

 

제주에서 출발해 서귀포에 들어서자마자 서귀다원에 들러 차를 한 상자 구입하고, 다원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차를 마시고 기분 좋게 출발한 이날 오전 난전 강법선 선생은 “부인이 함께 가겠다고 한다”며 며칠 전부터 벼르고 별러 떠난 길이라 특별한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 했다.

난생 처음(?) 부인과 함께 올레를 걷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출발점인 법환포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54분.

이날 난전 선생의 부인 정하연 여사는 올레를 몇 번 걷기는 했다고 하지만 자주 갖지 못하는 시간이라 그런지 정말 열심히 사진도 찍어가며 하루를 최대한 만끽하는 듯 했다.

다 걷고 난 후에도 “걷는데 힘이 하나도 안 들었다”며 “아마 공기가 좋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올레를 즐겼다.

 

이날 나와 함께 3명만 참가한 법환포구부터 시작한 7코스 하프코스 걷기는 처음 해녀 지원자들이 훈련하고 있는 물질을 보며 이어졌다.

특히 7코스의 후반부는 7코스의 주인공격인 범섬을 바라보며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서건도가 눈앞을 지배하고, 그 뒷 배경에 범섬이 자리하게 되는 바닷길 올레만이 주는 독특한 묘미가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을 다 지나면 아름다운 월평포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황근(노란 무궁화)이 너무 아름답다며 사진을 찍다가 “환경부 보호종”이라는 말에 “어쩐지 꽃에 품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하는 대화로 이어졌다.

바닷가 선인장에는 노랑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바닷가 한 꽃밭에서는 요즘 보기조차 어려워진 나비들이 수백마리나 춤을 추고 있었다.

7코스를 빛나게 만드는 범섬과 서건도를 뒤로 하고 중간스탬프를 찍은 시간이 11시53분..

이곳에서 차 한잔을 하고 강정마을로 들어서기 위해 우리는 바닷길을 따라 다녔던 올레7코스의 옛길을 가 보기로 선택했다.

 

 

돌들의 정원이 주변을 압도하는 곳.

기암괴석이 마치 동물들의 소풍나들이같은 모습을 한 것처럼 보이는 바닷가 풍경이다.

마침 물이 빠진 상태라 우린 양말을 벗고 얕은 개울을 건너가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파격이었다.

돌다리를 건너듯 조심스럽게 물이 흐르는 개울을 건넜다.

 

건너자마자 만난 풍경은 해안 가득 쌓인 나뭇잎들..

그리고 상류에서는 주민들이 은어를 낚고 있었다.

바닷가 우체국 위로 올라 바다를 보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검정색 용암동물이 해안을 점령하고 이를 퇴치하려는 듯 파도가 달려드는 그 모습은 제주올레를 아무리 걸어도 잘 만나지 못하는 제주바다의 좋은 풍경이 됐다. 

그곳 바닷가 우체국에 앉아 잠시 쉬기로 하고 준비해온 체리를 꺼냈다.

옆에 미리 도착해 앉아있던 올레꾼에게 같이 드실 것을 권하자 “혹시 출판업에 종사하시지 않느냐”고 난전선생에게 물었다.

“저는 청주에서 내려와 올레를 걷는데 그 책을 30년간 구독한 애독자입니다. 아까부터 많이 뵌 분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30년 독자를 올레길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올레길에서의 이같은 우연은 남은 여정을 또 기대하게 만들었다.

 

 

강정천과 악근천은 은어가 자랄 정도로 물이 깨끗한 곳이라 벌써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이 보였지만 지금 해군기지로 인해 이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은 예전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강정마을로 들어서자 그 옛날 위용을 자랑하던 아름답기만한 구럼비바위가 사진으로 크게 걸려 있었다.

10여년전 직접 해군기지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들어가 봤던 곳이라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해군기지 반대싸움 4426일’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고 그림과 함께 “강정아 너는 이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라는 글이 함께 게시돼 있었다.

 ‘제주해군기지 때문에 연행 700여명 기소 587건,구속 60명, 벌금 4억원, 구상금(손해배상) 34억5천만원..이게 나라냐?’

 

도대체 해군은 왜 이 문제를 가만히 놓아두기만 하는지..

언제까지 이런 분란을 보고만 있겠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해군기지를 반대한 주민들 또한 해군의 적(?)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입장에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이다.

해군은 이들 반대주민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할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결자해지하도록 나서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해군이라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올레를 걷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올레를 처음 모두 걷고 완주증서를 받을 때 “해군기지를 지나는 올레길을 마을쪽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건의를 했었는데..이번에 보니 마을 안길을 걷도록 코스가 바뀌어 있어 걷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름다운 강정마을과 월평포구를 비롯한 월평마을을 지나는 동안 세계 어디에도 없을 그런 자연을 바라보며 김종철(오름나그네의 저자) 선생의 마지막 당부가 문득 생각났다.

“우리는 자연의 자식입니다. 어머니인 제주의 자연이 파괴되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지켜주십시오”

 

 

강정마을을 지나는데..이 마을은 가는 길마다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제주에서 이렇게 많은 물이 마을 곳곳을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작은 개물마다 농사를 위해 물을 끌어다 쓰는 장비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정작 물이 넘쳐흘러야 할 ‘큰강정물(강정동)’이라는 안내판까지 붙어있는 용천수는 말라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배려로 이곳을 쓸모 있게 만들었을 비석까지도 마모돼 있었다.

드디어 월평마을 야왜낭목 7코스 종점에 도착한 시간은 15시11분..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법환포구로 가서 보목포구에서 아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난전선생 부인은 처음 먹어본다는 자리구이까지..

 

 

이날은 걷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지금 80세가 되셨다는 그 미술학도의 이야기가 나를 지배했다.

이후 그 미술학도 K는 당연히 유명화가가 되었지만..

20대의 그가 무심코 저질렀던 그 사랑이 당시의 젊은 열정이었다면 80세가 된 지금 그의 사랑은 그의 인생의 어떤 여정으로 남았을까 하는 점도 궁금했다.

아마 난전선생이 또 전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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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춤 2019-07-01 22:47:43
올레길은 그렇게 인연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군요.
생생한 올레길 기사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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