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아미도령과 산신..선흘1리 탈남밭당(탈남밭일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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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아미도령과 산신..선흘1리 탈남밭당(탈남밭일뤠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7.03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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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선흘탈남밭일뤠한집은 피부병과 육아를 관장하는 신이다

선흘1리 탈남밭당(탈남밭일뤠당)

 

위치 ; 조천읍 선흘리 2612-27번지
유형 ; 민속신앙
시대 ; 조선∼현대

 

 


선흘분교장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북촌리로 연결되는 포장도로가 있다. 이 도로에서 북쪽으로 100m 정도 되는 곳에서 서쪽으로 들어가는 좁은 농로가 있고 그 길로 들어서서 조금 가면 두 갈래길이 되는데 왼쪽 길은 짧게 끝나고 오른쪽으로 150m 정도 가면 동백나무와 대나무, 폭낭(팽나무) 사이로 좁은 숲길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다.

커다란 암반으로 둘러싸인 숲 사이 주변보다 약간 웅덩이처럼 낮은 곳에 당이 설치되어 있다.
당 안에는 제단 위에 3개의 '궤'가 있고, 출입구 쪽에도 하나가 따로 있다.

궤는 제를 지낸 다음 제물을 조금씩 집어 넣는 곳이다. 20cm 정도의 높이로 작은 돌벽을 세우고 그 위에 기와지붕 모양으로 조각한 돌을 얹어 놓았다. 궤의 크기는 맨 왼쪽부터 ①52㎝×35㎝, ②65㎝×50㎝, ③55㎝×45㎝, ④67㎝×51㎝이다.

앞에는 납작한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로 문을 삼아 세워 놓았는데 쉽게 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들이다. 궷문은 열려 있는 경우가 많다.

궤 앞에는 시멘트 몰탈로 마감한 단 위에 평평한 자연석에 옆면을 시멘트로 마감한 높이 10㎝ 정도의 제단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나 별로 높지 않고 앞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일뤠할망, 에미(아미)도령, 산신의 신위라고 하며, 입구 쪽에 있는 궤는 3신위의 심부름꾼이라고 한다. 또는 탈남밭일뤠한집과 정중아미정중부인을 모신다고도 한다.


제단 주변으로 사람 키 정도의 돌담 울타리가 둥글게 잘 정돈되어 있고 그 안에는 키가 큰 동백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다. 울타리 밖에도 키 큰 나무가 많아 낮에도 어둡게 느껴진다.

울타리의 동쪽은 서로 어긋나게 되어 입구로 쓰고 있으며 계단이 2단 놓여 있다. 당 안에 있는 나무에 빨래줄처럼 줄을 매어 지전(저승이나 신의 세계에서 쓰이는 돈을 뜻함)과 물색(신에게 바치는 옷감, 신을 아름답게 치장해 드린다는 의미)을 걸어 두는 곳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줄도 없어졌다.


이 당에 모시고 있는 웃선흘탈남밭일뤠한집은 피부병과 육아를 관장하는 신이다. 신 이름을 나누어 해석하면 웃선흘은 지금의 선흘1리 학교가 있는 마을, 탈은 산딸기의 제주어, 남은 나무의 고어(옛말), 일뤠는 이레=7일, 7일에 당에 간다는 뜻, 한집은 신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탈남밭은 지명이다. 일뤠한집 외에 아미도령과 산신을 같이 모신다. 알선흘(지금은 마을이 없어졌지만 선흘리 2661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을 알선흘이라고 하였음)에 모신 당은 할으방(할아버지)이고 웃선흘에 모신 신은 할망(할머니) 즉 부부신이라고 한다.


이 할망(할머니)신에게 자손을 얻도록 생불환생시켜 달라고 기도를 하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생불환생은 불교에서 쓰는 말인 성불(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한다는 뜻)을 잘못 발음하는 것이고 환생은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아기 못 낳는 사람이 수륙제를 올리는 당이며 당에서 자손을 얻게 해 달라고 빌면 효험이 있다는 설명도 있으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수륙재(水陸齋)는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의 줄인 이름이며, 불교에서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하여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식이므로 이 당에서 올리는 제와는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제를 지내는 날은 음력 1월 3일, 1월 7일이며 심방(무당)을 모시고 같이 가서 제의를 행한다. 당굿은 신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서 악기를 울리지 않고 심방이 '앉은제'(심방이 춤을 추거나 일어서서 돌아다니지 않고 앉은 채로 소원을 말하는 방식)로 당신(堂神)께 단골(신앙민)들의 소원을 말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제물로는 메(신에게 바치는 밥) 3그릇, 과일, 말린 생선, 곤떡(송편) 등을 올린다. 다만 에미(아미)도령에게는 바닷고기를 올리지 않는다. 이것을 올리면 집안의 어린 아이들에게 허물(종기, 부스럼)이 난다고 전해오기 때문이다.

요즘도 신앙민들이 다니는데 궤 안에는 삶은 달걀이나 콩나물도 있는 것을 보면 제물을 예전과 똑 같이 마련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삶은 달걀을 올리는 것은 껍질을 벗겼을 때 하얗고 보드라는 속살이 나오는 것처럼 피부를 깨끗하게 해 달라는 유감주술의 하나이다.

이 당과 관련된 설화는 다음과 같다.


〈알선흘에서 함덕리로 가는 중간 엉물이라는 곳에 김선달이란 어른이 살았다. 김선달은 벼슬을 얻으려고 한양에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은 옥 같은 아기씨가 배에 타서 김선달 옆에 앉아 있었다.

이 아기씨는 김선달이 벼슬살이 원살이 직감살이 하고 올 때 따라온 조상(神)이다. 김선달은 이 아기씨를 데리고 와 병풍 뒤에 숨겨 살았다. 김선달의 부인이 밥상을 차려 가면 전보다 더 먹고, 세숫물도 가져가면 전보다 더 궂어지니 어떻게 된 일인지 하여 근심이 컸다.

한 번은 또 서울로 직제를 받으러 간다기에 부인이 달려가 병풍을 걷어제치니 거기에 옥 같은 아기씨가 앉아 있었다. 본부인은 화가 나서 귀를 잡아 내흔들며 내쫓아 버렸다. 아기씨는 갈 곳이 없어서 제주도를 돌고 돌다가 지쳐서 선흘 지역까지 왔다.

물명주 단속옷도 헤어지고 물명주 치마도 찢어져 낭썹에 물썹에 걸어지멍 정처없이 헤매다 지쳐 웃선흘 탈남밭할망 곁에 와서 정중부인으로 좌정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탈남밭할마님과 함께 제를 받는 신이 되었다.〉


〈김동지 영감은 웃선흘 조상인데 본부인 모르게 첩에서 난 자식을 병풍 뒤에 감춰두고 키웠다. 평소에 밥을 남기던 남편이 깨끗이 다 먹어 남기지 않고, 세숫물도 되게 나오자 본부인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영감이 벼슬자리 때문에 서울로 가자 병풍을 들춰 보았더니 아기가 숨겨져 있었다.

본부인은 화가 나서 아기를 때리자 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영감이 돌아와 아기가 없는 것을 보고 한라영산에 찾으러 갔으나 찾지 못했다.

선흘곶에 찾으러 갔는데 가시나무에 분홍치마가 걸려 있어서 찾았는데 너는 이제 할 수 없으니 큰할망 옆에서 얻어먹으라고 했다.〉
《작성 071203, 보완 150903, 1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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