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아끼던 쉼터..신산리 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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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아끼던 쉼터..신산리 산수정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7.13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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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깊으니 홰나무(훌륭한 인재)에서 맑은 바람이 일어나고..

신산리 산수정

 

위치 ; 성산읍 신산리
유형 ; 쉼터
시대 ; 대한민국

 


지금 위치에서 북쪽으로 30m 지점에 있었으며, 예로부터 맑고 시원한 우물과 팽나무 고목이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이 있는 곳을 '산수정'이라 부르며 마을 사람들이 아끼던 곳이다.(현장의 안내판)


유구에 따른 기단석으로 보이는 석재 유물과 우물이 남아 있었다. 정지(亭址)에는 고목 3그루가 있고 넓적한 석재 유물 15점이 있다.

이 가운데 표준이 될 만한 판석의 크기는 83×86×12cm, 63×65×12cm, 48×89×10cm 등이다. 마을 사람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었다.


산수정에 대해서 확실하게 전해지는 것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 일을 의논했고 유생들이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203쪽)

정지의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석제유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음각되어 있어 당시의 산수정 상황을 잘 말해 준다.


전면 ; 山水亭 山深玉樹淸風起水滿溪泉明月臨 亭上石峰千古色康衢松竹長春心 檀紀四二八九年五月 日

후면 ; 산수뎡
마을 사람들은 건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개인이 팽나무 그늘을 의지하여 사람이 모여 놀 만한 대(臺)를 만들어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 분의 아들과 이설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하였다.(1996년 12월 20일 신산리장과 면담)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산이 깊으니 홰나무(훌륭한 인재)에서 맑은 바람이 일어나고
물이 가득하니 산골 샘에 밝은 달이 이르렀네.


정자 위 돌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강구(거리)의 송죽은 늘 푸르네.(해석 ; 김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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