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큰물뫼오름(大水山峰)..성산읍 고성리 수산망(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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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큰물뫼오름(大水山峰)..성산읍 고성리 수산망(봉수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7.2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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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산을 이용한 봉수대 25개소와 해안선 고지대에 설치한 연대 38개소가 있었다

성산읍 고성리 수산망(봉수대)

위치 ; 성산읍 고성리 2039-1. 대수산봉 정상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시대 ; 조선 후기

 

 


고려말부터 조선조에 이르러 왜구의 횡포가 극성을 부리므로 조선 조정에서는 제주 방어를 위하여 세종19년(1437) 정월에 한승순을 안무사로 임명하여 방어시설을 갖추도록 하였는데, 3성(제주․대정․정의), 9진(김녕․조천․별방․애월․명월․차귀․동해․서귀․수산), 10수전소(화북․조천․어등․애월․명월․열운․서귀․모슬․색․우포)와 25봉수대, 38연대를 이 때부터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제주통사 103쪽)

제주도 일원에는 산을 이용한 봉수대 25개소와 해안선 고지대에 설치한 연대 38개소가 있었다.(제주의 문화재 158쪽)


망(望)은 봉수대를 뜻한다.

봉수대는 해안에서 1-2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오름을 이용하여 오름의 정상 둘레에 흙을 돋우어 원형(지름 7-10m)의 둔덕을 이중으로 만들고 가운데에 봉덕을 설치한 것이다.


수산봉수는 고성리에 위치한 큰물뫼오름(大水山峰, 해발 137m) 정상에 있다. 협자연대와는 직선거리 3.3Km가 되며 지리적 위치는 동경 126°54′, 북위 33°26′에 해당된다.


형태는 토축(土築)한 두 겹 원형 봉수대인데 중심부에서의 반경이 내부 17m, 외부 22.5m 되는 거리에 둑과 둑 사이에 고랑을 두어 이중의 둑을 쌓고, 다시 한 단 높게 반경 14.8m․둘레 43m의 봉우리 형태를 만들었다.

이중으로 둑을 쌓았던 흔적이 확실히 남아 있으나, 북쪽 일부는 잡초와 잡목으로 뒤덮여 한눈에 알아보기는 어렵다.


수산봉수는 수산진 소속으로 초기에는 소수산봉에 있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 대수산봉으로 이설하였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대수산봉에 있다가 조선중기에 잠시 소수산봉으로 옮겼다가 다시 대수산봉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응소 지역도 초기에는 북으로 지말산 또는 입산과 교신하였으며, 조선중기 이후로 동으로는 성산망(4.2Km), 서로는 독자망(7.3Km)과 연락을 취하였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125쪽, 제주의 방어유적 190-191쪽) 봉수 이름과 응소봉수대가 1530년의 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小水山’ ‘應只末山’, 1653년 간행된 탐라지에는 ‘小首山’ ‘東應城山西應獨子’로 되어 있고, 근무자에 대해서는 탐라지에 ‘監官一人別將六人望漢十二名’이라 되어 있다.


봉수대의 서남쪽으로는 긴급 상황이 생기면 연기를 더 피우는 봉덕 4개가 약 10m 간격으로 나란히 남아 있으나 잡목에 덮여 확인이 어렵다.(2008년 1월 24일 답사) 위 사진은 셋째 봉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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