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는 사유의 길, 흐르는 땀은 사유도 잠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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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는 사유의 길, 흐르는 땀은 사유도 잠들게 한다."
  • 고현준
  • 승인 2019.07.2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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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중문색달해변-대평포구..신이 내린 선물 중 으뜸의 길

 

 

한라산 산신령 이야기 둘..

 

십 수년 전 초여름에 한라산을 오를 때의 일이라고 한다.

백록담을 향해 한라산을 올라가는데 여고생들 수십명이 단체로 “벗어라..벗어라..”라는 노래를 크게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산에서 시끄럽게 그런 노래를 부르면 되느냐”고 야단을 쳤다는 것인데..

이런 일이 있은 조금 후 초여름이었는데도 하늘에서 우박이 엄청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학생들이 그렇게 시끄럽게 노래를 하니까 산신령이 화가 난 것”이라며 소리쳤다고 한다.

여고생들은 이 말을 듣고 산신령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고 하고..

 

두 번째 이야기는..

 

난전선생의 선배 한 분이 풍으로 쓰러진 후 어느 정도 지난 후에 다시 만났는데..

“내가 신을 만났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신이 뭐라고 합디가..?‘

“내게 지금은 올 때가 아니니 내려갔다가 12년 후에 다시 오라고 하더군..”

“혹시 그 신이 입은 옷이 갈중이처럼 보이지 않습디까?”

“맞아. 갈중이를 입은 것 같아..”

“그렇다면 그 신은 한라산 산신입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은 이 사람은 지금 그 일을 겪은 지 10여년이 지났다고 한다,

2년 후면 12년째, 그가 그 해에는 어떤 상태에 있을 것인지 궁금한 일이다.

 

제주올레 하프코스를 걷기로 한 지난 21일(일요일)은 ’태풍 다나스(경험)‘가 큰 비를 내리며 제주도를 훑고 지나간 다음날이었다.

계곡에는 많은 물이 소리내 흐르고, 높이 솟은 절벽에서는 갑자기 만들어진 폭포수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지만 걷는 내내 큰 피해상황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끔 해안가 마을에는 파도에 쓸려 땅위로 올라왔을 작은 돌들과 어쩌면 남쪽 나라 어디에선가부터 흘러왔을 야자수 열매도 두어 개가 보일 뿐이었다.

작은 포구에는 각종 바닷가 쓰레기들이 가득 한 곳도 있었지만 해안가에는 감태가 잔뜩 올라와 뒹굴고 있을 정도였고..

작은 태풍이라고는 했지만 이틀동안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고 비만 거세게 내린 태풍이었다고 기억한다.

이날 하프코스는 중문해수욕장(중문색달해변)에서 대평포구까지 10여km 정도 남은 구간인 8코스의 끝까지 걷는 코스였다.

 

제주시에서 남원을 지나 중문까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하늘은 맑아 한라산이 청아하게 보일 정도로 산뜻했다.

하지만 서귀포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안개가 자욱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안개가 아니었다.

금방 폭우라도 내릴 정도로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출발점인 중문해수욕장 주차장에 다다르자 곧 비가 내릴 것 처럼 우중충해져 나는 우산을 들고 올레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중문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따라 5분 정도 걸었을까..

어느새 안개는 다 걷히고 땡볕이 쨍쨍 내려쬐기 시작했다.

우산은 이미 짐이 되고 있었다.

걷기조차 힘든 모래사장을 힘겹게 지나 하이야트 호텔을 오르는 길로 나아갔다.

하이야트호텔은 잘 정돈된 잔디밭과 다양하게 핀 꽃들이 매우 고운 호텔이다.

줄줄 흐르는 땀..우리는 이 호텔 바다가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잠시 땀을 식혔다.

 

 

하이야트 호텔에서 갯깍(바다의 돌언덕)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해병대길로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지금은 올레코스가 폐쇄된 상태..

난전 강법선 선생은 이 길은 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는 폐쇄된 길을 한번 걸어가 보기로 했다.

폐쇄되긴 했지만, 이 갯깍 바닷가 해안길은 큰 몽돌이 가득한 제주에서도 보기 드문 특이한 곳이다.

사람은 다니지 않지만 걷기에 좋을 정도로 예전에 만들어놓은 올레길이 걷는 발길을 편하게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까 할 정도로 땅위에 솟은 주상절리가 위용을 자랑한다.

적어도 세 개의 돌머리가 바다를 향해 포효하듯 웅장한 모습으로 태평양을 응시하고 있었다.

낙석위험 구간이라는 곳에 다달았다.

낙석위험이 있어서인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해식동굴은 많은 돌들로 안이 채워져 막혀 있었다.

아마 더 이상 파도가 이곳을 쳐들어오지 말도록 인간이 임시조치를 취한 것이겠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놓아두어야 하련만..

 

 

 

곧 뭔가 떨어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주상절리의 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했다.

많은 비가 온 다음 날이라 그런 걱정을 더 했을지도 모른다.

갯깍을 지나며 중간 중간 사진을 찍어보니 그야말로 거대한 옹성처럼 버티고 선 장엄함까지 느끼게 했다.

이 길을 걸으며 중간 쯤 왔을 때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한 관광객이 물었다.

“저쪽으로 가면 볼게 더 많은가요..?’

”저 길로 쭉 가면 중문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이곳보다 훨씬 멋있지요..“

 

 

 

 

이 길은 걸어 나오는 동안 모래사장을 걷는 힘든 발걸음과 함께 후줄근한 땀에 피곤이 몰려왔다.

우리는 예래동 새마을부녀회가 운영하는 도란도란이라는 예래문화공간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아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물로 한참을 닦았다.

올레는 사유의 길이라고도 하지만 흐르는 땀 앞에서는 사유는 잠시 잠들고 만다.

아무 생각 없이 가라고..여름 올레는 오직 걷게만 만들기 때문이다.

육체의 고통이 사유의 길인 것처럼..

사유할 여유조차 여름 올레길에서는 사라져 버린다.

 

 

 

이 길에는 환해장성이 이어지는 올레 길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 전역에 만들어진 환해장성..

이곳 환해장성에는 문화재로 보호해야 한다는 글귀가 환해장성이라는 말과 함께 쓰여져 있었다.

우리는 이제 점차 폐허가 돼 가고 있는 예래관광휴양단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면서 지나쳐 이 고장의 명물 논짓물에 섰다.

놋짓물은 아직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태풍이 지난후 스탭들이 해안변 청소에 나서서 자연 풀 안으로 들어온 각종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었다.

물대포를 쏘며 이곳이 논짓물임을 알리는 그곳 저편 바다에서는 하얀 파도가 달려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논짓물에 풍덩 하고 빠지고 싶을 정도로..

 

 

놋짓물을 지나자 그 다음 나타나는 예래동 해안은 기암괴석이 만들어놓은 또 다른 세계가 자리해 우리를 반겼다.

자연이 만든 호수와, 각종 동물의 형상까지..

난전선생은 ”아마 이곳에는 12개 신상이 다 있겠다“며 자연이 준 선물에 놀라워했다.

그곳에는 바다에서 멱을 감는 돌로 만든 동물들이 여름을 즐기는 모습도 관찰됐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있는 미답의 길처럼..

줄지어 용암들로 이뤄진 해안선은 이곳이 제주올레 길인가를 되묻게 했다.

이런 기묘한 길은 당포라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길게 이어졌다.

 

 

당포 팔각정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고 일어섰다.

그러자 곧 눈앞으로 멀리 박수기정이 펼쳐져 보이기 시작했다.

갯깍의 장엄함에 반한 후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미지의 박수기정이 손에 닿을 듯한 거리로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산방산을 뒤로 하고 병풍처럼 하늘 가득 서 있는 천혜의 철옹성처럼..

그곳에 해안을 방어하는 큰 요새 하나가 우뚝 웅장하게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이곳에는 또 바닷가 바위에 강태공들이 가득이다.

그런 길가 소나무에 그네가 하나 달려 있어 운치를 준다.

난전선생은 재밌다며 그네를 타고..

비록 그네는 달고 있었지만, 보기에도 너무 우람한 이 소나무 하나가 마을의 품위를 남 몰래 지켜주고 있었다.

 

 

이제 박수기정을 제대로 소개할 차례다.

샘물(박수)을 뜻하는 박수와 절벽(기정)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져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박수기정.

그렇다면 박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은 “박수물은 안덕면 감산리 1008번지의 남쪽 박수기정 중간에 수리시설(용천수, 석간수)로 존재한다“고 전하고 있다.

“안덕면 대평리에는 다른 마을에 있는 흔한 해안 용천수를 쉽게 찾을 수가 없지만 예부터 주민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오랜 세월을 살아 오고 있다는 것은 어디엔가 샘물이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

이는 “물과 마을의 설촌간에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은 고영철 회장이 전하는 박수에 관한 얘기다.

진짜로 존재하는 박수물(사진=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박수라는 말은 바가지로 퍼올릴 수 있는 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박수기정 절벽 바위 틈에서 물이 나온다.

깎아지른 듯한 높다란 절벽이 약 130m 정도나 되는데 지상에서 3m 정도 됨직한 중간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샘물은 사람 목구멍 만한 바위 틈에서 솟아나 바가지 하나 들어갈 정도의 옴폭한 곳에 모였다가 다시 바위 밑으로 흘러내린다.

수량은 늘 변함이 없다. 이곳 지경이 감산리에 속하나 예부터 박수물을 대평리 주민들이 이용하고 관리해 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샘물에 얽힌 분쟁은 전혀 없었다.“

 

대평포구는 물고기카페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후 점차 유명해졌다.

지금은 전혀 새로운 관광의 명소로 변해 버린 이곳은 처음에는 민박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더니 지금은 팬션과 카페가 즐비한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제주에 오면 대평포구를 한 번 가 봐야 하고 박수기정의 그 자태에 또 한번 더 놀라야 한다”는 곳이다.

대평포구에서 바라다보이는 박수기정은 사진으로 보아도 사실 이 기막힌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이 없다.

각자의 마음속에 그 느낌을 담아둘 수 밖에..

 

이날 당초 1시까지만 걷기로 한 8코스 하프걷기는 12시30분까지 모두 걷고 우리 둘은 대평포구 9코스 올레스탬프가 서 있는 바로 옆 명물식당에서,  돌로 만들어진 탁자에 앉아 한치물회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왔다는 착하게 생긴 청년이 서비스하는 식당이었다.

제주도식으로 만든 한치물회 맛 또한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택시를 불렀더니 5분 안에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텍시에 타서 난전선생이 박수기정에 대해 소감을 전했다.

”박수기정 참 대단허네 예..정말 멋진 곳이우돠..“

운전기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뭐가 멋질 말이꽈..제주시에도 다 저런 곳이 있고 마찬가지로 예쁘쥬..제주사람이 뭐 서울사람처럼 얘기햄수과..“

”..“

 

우리는 그 다음 할 말이 없어 택시에서 내린 후 서로를 보며 말했다.

”아마 우리도 평생 제주에만 살았다면 저런 식으로 말하고 있을 거야..“

 

제주도말로 툴하다(거칠다)는 얘기를 우리는 제주도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다른 지방에서 온 관광객이라면 매우 친절하게 답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제주도의 좋은 점을 하나라도 더 전달해주기 위하여..

 

우리는 또 박수기정에 올라 세상을 포효하게 될 9코스를 벌써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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