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복덕이 들어오는 포구..귀덕1리 원복덕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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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복덕이 들어오는 포구..귀덕1리 원복덕개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8.09 0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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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신'은 바로 이 '복덕개'로 들어왔다가 우도로 나간다고 한다.

귀덕1리 원복덕개

위치 ; 한림읍 귀덕1리 포구 동쪽
유형 ; 생산기술유적(포구)
시대 ; 조선∼

 

 


'원복덕개'는 지금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포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크기가 그렇게 작음에도 불구하고 '복덕개'를 '큰개'라고 한다.

이는 이름 그대로 '복덕(福德)'이 들어오는 포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 巫俗社會에서 '영등신'이 음력 2월 초하룻날 들어왔다가 보름날 떠난다는 믿음이 있다. '영등신'은 바로 이 '복덕개'로 들어왔다가 우도로 나간다고 한다.

'영등신'은 그 해의 바다밭은 물론 뭍의 밭에 뿌려질 씨앗을 가지고 온다고 믿는다. 그러니 '복덕'은 福德의 의미를 지닌 말일 수 있다.

그래서 영등올레라고 부르기도 하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영등맞이굿이 성대하게 열리는 포구였다.


갯가 너럭바위 틈 사이 50m 안팎으로 꼬불꼬불 골진 목으로 들어오면 조금 펑퍼짐한 포구가 있다.

배가 들어오는 목 양쪽으로 낮으막히 돌담을 쌓아 만들었고, 포구에는 돌담으로 둘러 목과 구분했다. 바닥에는 하얀 모래가 깔려 있다.

포구는 潮間帶 상층에, 그리고 목은 중층에 걸쳐 있다. 그러니 썰물에는 목 바깥에 배를 붙여 둬야 하는 불편이 따랐다.


지금은 이 포구는 배가 드나드는 포구로서의 기능은 없어졌고 '영등신이 들어오는 포구'라는 상징성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2013년에 위 사진과 같이 정비하였다.

1908년 제주의병항쟁과 관련하여 1909년 3월 3일 고사훈과 김만석은 총살되었고, 의병 참모 김석명은 동광양에서 체포되었으며, 이중심은 조인관·노상옥 등과 더불어 귀덕 포구에서 육지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바로 이 포구로 탈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성 080212, 보완 1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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