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200년 이상..하도리 금붕사오백라한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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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200년 이상..하도리 금붕사오백라한그림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8.14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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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이런 모습을 그린 불화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하도리 금붕사오백라한그림

위치 ; 구좌읍 하도리 995번지
유형 ; 그림(불화)
시대 ; 조선(추정)

 


종달리 마을 북서쪽 일주도로변에 금붕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는 오백라한상을 그린 오래된 불화가 있다.

그림의 가운데 맨 아래에 그린 사람이나 시기에 관한 글이 있었을 만한 공간이 비어 있다.


1995년경 만난 주지스님의 이야기로는 '제주대학교 모 교수가 보고 조선 초기 작품으로 보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2008년 2월에 만난 스님의 말은 "원광대 불교미술전공 교수가 보고 말하기를 200년 이상 된 작품이라고 감정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다른 탱화들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황인·백인·흑인이 모두 등장하고 있다. 둘째, 인물의 표정과 시선 방향·동작이 모두 제각각이다.

세째, 등장인물의 복식(服飾)이 옛 중국 옷을 닮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이런 모습을 그린 불화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금붕사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법화사나 원당사와 같은 시기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며 1702년 이형상 목사가 폐사했다고 한다. 새로 창건한 시기가 1926년이라고 한다.


4.3 당시에는 토벌대에 의해 스님이 총살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입산자나 무장대의 일부가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금붕사에 들러 식량을 가져간 적이 있었고, 1949년 1월에는 토벌대에 쫓기던 '테우리'가 금붕사로 피신해 오자 스님이 그를 감추어 주었다.

잠시 후 군인들이 이 절에 들어와 '폭도를 감추어 주었다'는 이유로 이성봉 스님(속명 이준구)까지 총살해 버린 것이다. 그의 유해는 고향인 행원리에 옮겨졌다.


1995년경에 만난 주지스님이 '처음 이 절에 왔을 때부터 걸려 있었는데 배접한 종이가 가루처럼 부식되어서 궤 속에 보관하기를 20년쯤 하고 나서 최근에 다시 표구해서 대웅전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추정컨대, 이 그림은 중국에서 그려진 것이 어떤 경로로 우리 나라에 들어왔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이 절을 창건한 스님이 육지부에서 구해 가지고 와서 모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은 액자에 넣었는데 유리를 끼웠다.


금붕사 터는 고려시대 동수암이라는 절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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