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무장대에 희생..저지리 물골성(수동 마을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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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무장대에 희생..저지리 물골성(수동 마을성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9.02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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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성담은 조수와 저지의 경계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저지리 물골성(수동 마을성담)
 

위치 ; 한경면 저지리 1187∼1198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유적(성)

 

 


조수리 한양동을 지나 저지리로 들어서는 초입에 '저지리'라는 마을 표석이 새워진 곳이 수동이다. 이 표석 서북쪽에 성벽이 있다.


제주의 마을 시리즈 저지리(1991)에 따르면 저지리에서는 본동과 산쪽에 가까운 명리동이 서로 적대적인 상황이었다고 한다.

본동에서는 1948년 4월 7일과 5월 13일 2차례에 걸쳐 무장대의 습격을 받아 순경 1명을 포함한 12명이 희생되었다.

4월 7일에는 양석구·고정삼씨는 문도지오름에 소 보러 갔다가, 이봉씨 부부는 유채 베러 갔다가 죽창으로 살해당했으며 김귀원, 김태종, 고창윤 씨 등도 희생되었다.

5월 13일에는 김인하 순경, 문명조, 박용주, 문인 씨 등이 사망했으며 5월 30일에는 강임생씨가 피랍된 후 사망했다. 명리동에서도 4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91년이므로 그 후 확인된 희생자가 더 있을 것이다.


저지리 수동(水洞) 주민들은 1949년 5월 조수리가 복구되자 일단 조수리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가 얼마 없어 수동에 성을 쌓고 복귀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담은 조수와 저지의 경계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담 일부는 개인 집 울타리로 이용되고 있지만 비교적 보존이 잘 된 편이다.(제주4·3유적Ⅰ 885∼886쪽) 저지리 1196번지 북쪽 울타리가 견고하게 남아 있는데 이 집에 살고 있는 문성년씨는 집 옆 길이 서문(西門)이 있던 곳이라고 하였다.

사진에 회곽도처럼 보이는 곳은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문씨가 나중에 마당에 있는 돌들을 정리하느라고 덧쌓은 것이라고 하였다.

사진에 회곽도처럼 보이는 곳은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문씨가 나중에 마당에 있는 돌들을 정리하느라고 덧쌓은 것이라고 하였다.
《작성 080406, 보완 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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