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조롱물..산양리(청수리) 노랑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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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조롱물..산양리(청수리) 노랑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9.0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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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접한 월광동 주민들에 의해 운영됐으나, 동네가 작아 큰 옹기 생산은 하지 못하였다

산양리(청수리) 노랑굴

시대 ; 1950년 축조
유형 ; 생산기술유적(옹기가마)


위치 ; 한경면 청수리 16번 도로상에서 산양리 복지 회관 맞은편 서광 쪽으로 올라가면 월광동 사거리를 만난다. 그곳에서 다시 직진하여 평화동 쪽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조롱물이 있다.

여기서 다시 1.25㎞쯤 직진하여 올라가면 월광동 버스 정류장을 지나 좌측에 50m라고 쓴 속도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 표지판 바로 위쪽에서 가마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찾을 수 있다.(소재지의 번지는 청수리이지만 산양리에 속한다.

이용한 사람도 산양리 월광동 주민이다. 원래 청수리에 속해 있다가 1914년 3월에 본동, 지거흘, 너버흘, 멜덴밭, 빌레왓을 청수1구로 하고 청수2구는 연화동, 수룡동, 자록동, 따리왓동, 파동 등을 합하여 구분하였다. 그러다가 1956년 청수1구는 청수리로, 청수2구는 산양리로 분리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지만 번지는 바꾸지 않았다.)

 

 


제주 전통 옹기인 주황색 옹기를 굽던 가마인데 가까운 곳에 조롱물이라는 연못이 있어 '조롱물 노랑굴'이라 부른다. 이 가마의 길이는 1,265㎝, 너비 150㎝, 높이는 200㎝이다. 넓적한 현무암 잡석과 진흙을 빚어서 벽과 천정을 쌓고 벽 내부에는 흙을 발랐다.

천장은 지붕이 허물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돌과 돌 사이에 잔돌을 끼워 넣었으며 가마의 내부 형태는 다른 곳 가마들이 U자를 엎어 놓은 모양인 데 비해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즉, 천정이 거의 수평으로 되어 있다. 천정 중간 부분이 허물어졌고 화구 앞의 불집은 길에 들어가 버려 흔적이 없다.


자연 경사를 이용하여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14도의 완만한 경사면에 축조되었다. 부장쟁이와 아궁이에 박혔던 세 개의 현무암은 유실되었고, 가마의 중간 부분의 천장에 구멍이 뚫려 유실되어가고 있으나 부장과 불벽, 불구멍, 특히 배연구(굴뚝)가 완벽하게 남아 있다. 제주도 내의 가마 중 배연구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가마이다.


부장(연소실)의 바닥 면은 중앙 부위가 조금 안으로 파인 듯하고 부장에서 소성실로 이어지는 높이는 170㎝이다. 불벽의 두 불구멍은 연소된 불길이 통하는 통염공(通焰孔)으로서, 가마 문 가까이 있는 불구멍은 높이 110㎝이며, 또 하나의 불구멍은 높이 70㎝이다.


소성실은 중간 부분이 넓고 높은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으며, 현무암과 잡석, 흙으로 만들어졌고 천장 부분은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판상형의 잔돌로 쐐기를 박았다. 내벽은 진흙이 잘 발라져 있고, 천장의 형태는 거의 수평에 가까워 천정과 벽이 맞닿은 부분이 수직으로 만나 가마가 사각형으로 보인다.


소성실이 크기는 높이가 앞부분은 140㎝, 중간 부분이 160㎝, 끝부분이 147㎝로서 중간 부분이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진다. 소성실의 전체 길이는 16m이다. 가마 출입구는 오른쪽에 있으며 사람이 허리를 굽혀 드나들 정도의 크기로서, 높이는 110㎝이고 둥근 반원형 곡선을 이루고 있다.


배연구는 네 개로서 사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고,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이 중앙의 두 개의 구멍보다 크다. 잿불 구멍은 좌우측 구멍이 마주 보게 나란히 있으며, 왼쪽 27개, 오른쪽 26개이고, 45~54㎝의 간격으로 뚫려 있다. 구멍 한 개의 크기는 16x15㎝이다.


부장쟁이와 소성실의 천장 부분이 유실된 것 외에는 가마의 내부가 양호하게 원형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굴의 진입로를 만들 때 길의 지면이 부장보다 높아 우기에 빗물이 가마의 부장(연소실)으로 흘러들게 되어 있어 시급히 길을 낮추고 부장쟁이를 복원하여 가마가 더 이상 유실되지 않도록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소성실 천장 부분이 두 군데나 크게 유실되어 있는데, 이 역시 점차 더 많은 부분이 유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유실된 부분은 길이 140㎝이며, 유실되고 있는 천장의 두께는 22~25㎝이다. 여기에서 주로 만들어졌던 옹기는 허벅, 항아리, 병 등과 같은 일상생활용 그릇들이다.


청수리 노랑굴은 한창 옹기 제작이 왕성하던 1950년대에 축조되었다. 청수리 노랑굴은 주로 인접한 월광동 주민들에 의하여 운영되었으나, 동네가 작아 큰 옹기 생산은 하지 못하였다. 가마를 축조하였던 계원들이 순번대로 물레 대장들을 고용하기도 하여 옹기들을 제작하고 소성하였으나 1960년대 중반기에 가마 문을 닫고 말았다.


폐요된 뒤에 굴 안에서 버섯 재배를 하였다고 하나 다행히 가마의 원형이 많이 훼손되지는 않았다. 이는 가마가 곶자왈에 위치하고 있어 가시덩굴과 나무들이 뒤엉켜 인접하기 매우 어려웠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본보(제민일보) 취재팀이 지난 4~5일 한경면 청수리에 위치한 도요지(가마터)를 찾은 결과 주변에 무성한 나무와 넝쿨로 인해 입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방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20여년전 도로공사 과정에서 나온 암반들이 가마의 윗부분에 쌓이면서 흔적을 찾기 힘든 실정이다.(제민일보 130906)

《작성 080410, 보완 1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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