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옛고향 못내 그리워..곽지리 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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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옛고향 못내 그리워..곽지리 포제단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9.18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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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일 두루고루 태평하라고 이국 땅 하늘 아래 빌고 또 지고.. .

곽지리 포제단

 

위치 ; 곽지리 과오름(말젯오름) 서쪽 능선 바로 아래
유형 ; 민속신앙
시대 ; 고려~현대

 

 

 

 

포제단 앞에 2003년에 건립된 유래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새겨져 있다.


〈포祭壇設立年代는 考證이나 記錄이 없어 未詳이나 서기1300년 高麗 忠烈王26년 郭支縣이 되고 縣廳이 設立된 以後 耳角凸凹(귀뿔이) 1025번지에 포祭廳을 設立하여 春秋 年2회 포祭를 奉祭하여오던 중 샛오름으로 옮겨지고 샛오름에서 다라코시로 옮겨졌다고 口傳됩니다.

1926년 里가 分區되면서 2區(下洞)는 射場田 現 郭錦初等學校 校庭에 祭壇을 新設하였으며, 1區(上洞)는 다라코시 祭壇을 이용하였습니다. 1946년 2區 祭壇은 郭錦初等學校 新築으로 인하여 대추낭빌레로 移設되고, 1948년 1區 祭壇은 속칭 한송이로 移設되었습니다.

1951년 區가 里로 合區되면서 春祭는 한송이 祭壇에서 秋祭는 대추낭빌레 祭壇에서 1963년까지 奉祭하여오다가 里民 決議에 의하여 포祭가 中止되었습니다.

1992년 마을의 繁榮과 傳統文化를 繼承하고 後世에 길이 保存하기 爲하여 里民總會時(里長 李承林) 포祭를 復元키로 決議하여 1993년 癸酉 正月 十四日 郭南田 臨時祭壇에서 포祭를 奉行하기 시작하고 1993년 8월 귀뿔이 本來 祭壇 터 앞밭 1026번지 300坪 朴順吉氏 기증 土地에 祭壇이 新設되었습니다.

新設 當時 祭壇은 만들어졌으나 주위 울타리가 미진하여 2003년 마을 臨時總會時 울타리 築城決議에 의하여 울타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由來를 子子孫孫에 알리고자 적어 둡니다. 提供 張斗愼〉


포제단 안에는 장축 3m 정도 되는 직사각형에 가까운 커다란 상석으로 다듬어 받침 없이 그대로 2개의 제단으로 모셨는데 다듬기는 했지만 아직 자연석이라는 느낌이 많이 남아 있다.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여 절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북쪽 울타리에 붙여 작은 제단 2개가 있고 동남쪽 울타리 옆에는 묘의 토지신위를 모시는 것처럼 만들어진 床石이 있다. 북동쪽 모퉁이에는 望燎位가 있고 북서쪽 모퉁이에는 관洗位가 마련되어 있다.


곽지리사무소에는 〈讚 박순길님〉이라는 비석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고 떠난 옛고향 못내 그리워 祭壇터 삼백 남짓 바치는 마음 마을 일 두루고루 태평하라고 이국 땅 하늘 아래 빌고 또 지고. (박순길님은 志學에 故鄕을 떠나 大阪에서 自手成家 마을 祭壇 복원의 소식을 듣고 땅을 쾌적(快擲의 잘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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