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듯, 제주의 혼이 살아있는 무릉도원 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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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 제주의 혼이 살아있는 무릉도원 올레길.."
  • 고현준
  • 승인 2019.09.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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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12코스, 무릉외갓집-산경도예-신도2리는 숨은 비경 함께 한 자연의 길

(계속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제주올레12코스의 시작은 그렇게 난전 강법선 선생-정하연 여사 부부와 고광언 등 4명이 울창한 등나무 등걸을 지나는 것으로 시작됐다.

마을안으로 들어섰을 때 올레꾼을 위해 개방했다는 올레낭 그늘집에 들어가 차를 한잔 마시려고 했으나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지 물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구경만하고 그냥 나왔다.

박이 주렁주렁 달린 그 모습이 그래도 정겨웠다.

12코스는 날씨는 맑아 걷기에 좋았고 계속 밭만 보고 걷는 코스로 이어졌다.

 

 

 

중간중간 잘 익어가는 호박과 함께 밭에는 많은 곳에서 콜라비나 비트 브로컬리 등을 심는 농사가 한창이었다.

대정읍은 옛날부터 평야지대고 토양이 비옥해 농산물 산출이 많은 곳이었다고 한다.

이번 11-12코스를 걷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곳 평야지대를 지나며 이 지역은 먹고사는 일에 어려움이 없는 곳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바람이 많이 불어 모슬포를 못살포라 부른다고 했다지만 그말이야말로 참으로 잘못 알려진 낭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보면 만나는 양묘장들..

못살포가 아니라 잘살았을 포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듯 대정지역은 제주도 최고의 농산물 생산의 주산지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광활하기 만한 길고 긴 드넓은 평야지대를 지나고.. 우리는 도원연못이라는 곳에 도달했다.

이곳은 신도리(도원리)에 위치한 습지로, 철새들이 날아와 추운 겨울을 나는 곳이라는 해설판이 붙어있었다.

앞서 가던 난전선생이 연못이 보이는 한가운데 서서 뒤쳐져 걷던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흙탕물로 변한 이 연못을 보며 '자연을 거스르고 잘못 개발된 연못'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난전선생은 “이 연못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자연을 그대로 살려 개발됐다면 정말 제주에서 손꼽히는 호수가 됐겠지만 돌만 쌓아올려 만든 습지가 성의 없이 완전히 잘못 됐다”는 지적을 했다.

2개의 호수 저쪽 하수구에서는 생활하수인지 뭔지가 계속 다른 호수로 들어오고 있었고, “돌을 쌓아올려 만든 연못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누가 이곳을 찾겠느냐”는 질책이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호수와 어우러져 한라산이 훤히 내다 보이는 팔각정에 앉아 사과를 깎아 먹으며 환경을 거스르는 개발에 대한 우려의 말들을 나눴다.

 

 

 

 

난전선생은 “이곳 호수는 참 아름다운 곳이라 누구에게든 이곳 신도연못에서 만나자고 하고싶지만..지금 이 상태로 누구를 이곳에 부를 수 있겠느냐”며 “참 아까운 호수 하나를 완전히 버려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이곳을 떠나 걷다가 녹남봉을 오르는 입구에서 우리는 밭에서 작업을 하던 젊은 청년농부와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글서글하고 말씨에도 친절함이 벤 이 청년 농부는 “겨울에 지금 심고 있는 브로컬리가 나올 때 와서 사달라”고 호소하듯 말했다.

밭을 보니 세 분은 열심히 모종을 심고 있고 이 청년은 지게를 짊어지고 모종을 그 안으로 나르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파종을 하면서도 벌써 이를 판매해야 하는 농부들의 어려움이 느껴지는 아픔을 새겼다.

우리는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청년과 헤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길 녹남봉 입구에 서니 한라산의 자태가 참으로 웅장했다.

녹남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이 또한 그림처럼 아름답게 다가왔다.

 

녹남봉은 녹나무가 많아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고도 100.4m, 비고 50m의 조그마한 오름이지만 오름 정상에는 분화구를 갖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이 분화구를 ‘가매창’이라고 부른다.

가마솥 모양으로 생긴 바닥(창)이라는 의미다.

서북쪽으로 당산봉과 차귀도가 지척에 있고 제주도 최서단 오름인 수월봉과 최남단 오름인 송악산을 한눈에 볼수 있는 곳으로 오름 정상 원형분화구 안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은 도내에서 유일한 곳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탐라도 탐라순력도 탐라지도병서 제주삼읍도총지도 등에는 용목악으로 기재하였으며, 조선지지 자료에는 녹남봉, 조선지형도에는 농남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예전에 녹나무가 많았다 하며 녹남봉(녹나무오름)이라 불렀고, 남국의 지명유래 지성기저에는 장목봉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나무는 제주어로 남 또는 낭이고 녹남, 농낭은 녹나무를 말한다.

이러한 역사적 근가로 볼 때 녹남, 농남으로 음 그대로 표기된 것은 녹나무가 많아서 녹남오름이라 불러온 것과 맞지 않으므로 예로부터 주민들에 의하여 녹남오름(녹남봉)이라 불러왔으므로 녹남오름(녹남봉)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아름다운 녹남봉 입구를 따라 녹남봉으로 들어서니 곧 가파른 오르막이 나왔다.

하지만 이 오름을 오르는 길은 참 사람 친화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점이 특이했다.

가파른 고개를 조금 오르면 평지가 나타났다.

평지를 조금 걸으면 다시 조그만 고개가 나타나고 다시 평지로 이어지는..

녹남븡을 오르는 사람들의 피곤을 조금이라도 덜하게 만들려는 배려가 돋보이는 오름이었다.

드디어 녹남봉 능선에 도착하니..

능선을 따라 녹남봉 분화구를 다 돌게 하고 분화구 입구에는 세 개의 벤치가 놓여져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이 분화구에는 감굴나무와 매화나무가 자라는 곳이다.

봄이 가까워지면 형형색색의 매화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하산길..

녹남봉을 다 내려오면 12코스 중간스탬프가 있는 산경도예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상 해녀상과 도예전시물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놓은 이곳은 이제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사람도 없었고 문도 닫혀 있었다.

몇 년전 퉁소를 죽장안에 넣고 다니는 스님을 만나 잠깐 조우했었는데..이미 옛날 이야기로 남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산경도예가 있는 학교를 나와 마을로 들어섰다.

이날 여정은 산경도예를 지나 신도2리 바닷가까지 걷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직 이곳 마을은 아파트 등 눈에 띄는 개발흔적이 없어 예전 그대로의 제주의 마을을 보는 느낌이었다.

개발의 유혹을 이기고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제주도의 몇 안되는 마을이라는 점에서 신도2리는 특별했다.

자연을 그대로 두니..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무릉도원 그 자체였다.

우리는 다시 밭들이 즐비한 들길을 따라 바다를 향해 걸었다.

걷고 또 걸어 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가에 이르니 속이 다 시원해졌다.

신비하기만 한 신도2리 바다가 우리 앞에 다가섰던 것이다.

밭만 보다 걷다가 훤히 트인 바다를 보아서인지 바다를 보자마자 마음이 활짝 열렸다.

앞서 걷던 고광언은 바다가 보이는 큰 돌앞에 서더니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하멜이 표류했던 곳으로 잘 알려진 신도2리..

이곳 신도2리 바닷가에는 하멜일행 난파희생자위령비가 세워져있다.

1653년 8월16일 하멜 등 그 일핼 64명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무역선 스페르웨르 호에 승선하여 일본 나가사끼로 항해하던 중 큰 테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이곳 신도2리 해안에 이르러 암초에 좌초 난파되어 28명이 희생되었다.

이에 늦게나마 구천을 떠도는 28명의 원혼들을 위로하고자 그 뜻을 같이 하는 모든 분들의 마음과 정성을 합하여 이 위령비를 건립했다는 신도2리마을회, 신도2리향민회, 네덜란드를 사랑하는 사람들모임, 해양탐험연구소 부설하멜기념사업회 등의 이름이 비에는 새겨져 있다.

무릉도원을 뜻한다는 도원 신도2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 같았다.

해안은 숨겨놓은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고, 녹남봉을 오르는 배려도 그렇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위령비까지 세웠으니 따스함이 넘치는 것이다.

 

 

 

우리는 따뜻한 느낌을 갖고 이 마을이 자랑하는 제주도의 오래된 전통어업인 바닷가 어로시설 원담을 가로질러 신도2리 포구까지 걸었다.

그리고 맛있고 저렴한 어촌계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이날 올레걷기를 마칠 수 있었다.

난전선생 부인 정하연 여사는 식사를 다 마치고 식대를 지불한 후 놀라면서 말했다.

“멋있게 한턱 쏘려고 했는데,,너무 저렴해요..”

 

올레를 걷는 일은 함께 나눔이다.

올레를 걷다보면 말을 나누고 우정을 나눈다.

인생을 나누고 사랑을 나눈다.

멀리 있기만 한 마을도 올레를 걷다보면 정겨운 내 이웃이 된다.

모두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격려가 올레길을 걷는 발걸음에 녹아있다.

올레12코스는 아직 반만 돌았지만..

사람의 온기와 농부의 땀과 결실을 기다리는..

그리고 하늘이 준 비경을 숨긴, 그렇게 아름답기 만한 자연의 길, 그런 좋은 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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