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평리 열운포수전소터(전선머리)
위치 ; 성산읍 온평리 '섯개' 포구 '전선머리'
유형 ; 방어유적(수전소)
시대 ; 조선
온평리 전선머리라 불리는 이곳은 수전소(水戰所)가 있던 자리이다. 온평리 어촌계 '소라의 성' 동쪽에 있었다. 현재도 포구로 사용하고 있다.
1437년(세종19)에 제주안무사 한승순에 의해 제주 방어 시설이 체계적으로 마련될 때 처음에 오소포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다.
이원진의 「탐라지」(1653년)에 의하면 〈열운포수전소는 현(縣) 동쪽 20리에 있다. 판옥전선이 1척, 비상 양곡이 1석이며 사군(射軍)과 격군(格軍)을 합하여 85명이다.
옛날에는 오소포에 있었는데 지금은 이 포구로 옮겼다.〉라고 하여 이러한 사실을 잘 반영해 준다. 또한 이 포구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선물입'(私船勿入)이라는 표석이 남아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하여 볼 때 각 수전소가 있던 포구에는 관선 이외의 사선은 입항이 금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116쪽)(남제주군·제주문화재단문화재연구소, 남제주군문화유적실태조사보고서. 2005. 110쪽)
'섯개'(西浦)에는 '전선머리 '라 하여 전선을 매어 두었던 포구가 따로 있었으며, 그 주위에는 군역집(軍役軒)이라 하여 무기를 보관하고 군무를 살피던 집이 있었다.
그리고 동개(東浦)에는 괘선포(挂船浦)라 하여 누선(樓船, 다락이 있는 배)을 정박시키던 포구가 따로 있었다. 수전소 터의 동쪽과 서쪽에 환해장성이 남아 있다.(南濟州 文化遺蹟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