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들꽃]띠(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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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들꽃]띠(새)
  • 김평일 한라야생화회 회장
  • 승인 2019.11.1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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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일 한라야생화회 회장

띠(새)

 

 

제주를 삼다도(三多島)라고 부른다.

삼다도(三多島)라는 말은 제주도에 세 가지가 많다는 말이다.

삼다(三多)는 여다(女多), 풍다(風多), 석다(石多)를 말한다.

제주도는 바람과 돌이 많은 화산섬이다.

화산섬(火山島)이므로 토양이 척박하고 강이나 저수지가 없어서 논을 구경하기 어려워 대부분 농사가 밭작물에 의존하다 보니 매년 춘궁기(春窮期)때마다 식량난에 허덕이던 곳이다.

제주는 우리나라로 올라오는 태풍의 길목으로 연중 크고 작은 바람이 부는 섬이다.

 

제주사람들의 삶은 바람과 돌과의 싸움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제주의 토양은 화산회가 쌓여 만들어진 토양이므로 토양이 매우 가벼워 바람의 불면 기름진 흙가루와 애써 뿌린 씨앗이 모두 날아가 버린다.

흙가루와 씨앗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곡식 씨앗을 뿌린 후 씨앗을 뿌려놓은 밭에 말 때를 풀어놓아 밟아주는 모습(밭볼리기)들이 과거 제주에서 농사짓는 모습이었다.

겨울철이 다 지날 무렵인 2~3월에는 보리가 싹이 터서 막 자라려고 할 때 흙이 가벼워서 보리가 뿌리 채 뽑혀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보리밭을 밟아주었다.

필자도 어렸을 때 학교 공부 대신에 보리밭을 밟으러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농사를 지어 놓은 밭에 대규모 아이들이 들어간다면 바로 쑥대밭이 되어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을 일이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쉬면서까지 학생들을 동원하여 보리밭 밟기를 해야 한해 농사를 잘 지어 배고프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보리농사가 가장 큰 농사로 매월 6월초 장마가 시작되기 전 1주일 정도를 보리방학이라고 하여 학교가 휴학을 하고 아이들은 가정에서 보리를 수확하는데 일손을 보태게 하였다.

지금은 사라진 ‘보릿고개’라고 하는 말도 이 시절에 있었던 말이다.

봄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떨어져 굶어 죽기까지 하던 시절 하곡인 보리가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가을에 걷어 들인 식량이 다 떨어져 굶주릴 수밖에 없게 되는 4∼5월의 춘궁기(春窮期)를 표현하는 말로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이 시절 조상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을 했다고 한다.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벗겨서 먹으면서 연명을 했던 힘든 시절이 ‘보릿고개’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는 대관령(大關嶺)도 아니고 한계령(寒溪嶺)도 아닌 ‘보릿고개’라고 했다.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이런 현상인데 제주는 육지지역에 비해서 더 열악한 땅에 소출도 얼마 안 되어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 보리밭 밟기와 보리방학은 학교에서 수행하는 행사 중 필수행사로 생각을 했다.

제주사람들은 이런 시련과 고통을 숙명으로 삭히면서 열악한 환경을 개척하고 땅을 다스리는 슬기를 제주에 흔하디흔한 돌과 바람에서 체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으로 지붕을 개조했던 6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의 집들은 대부분 초가집들이었다.

다른 지방의 초가집들은 농업활동의 부산물로 얻어진 볏짚 등을 가지고 바람보다는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경사를 급하게 만든 지붕이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초가집은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강한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초지에서 자생하는 자연 재료인 새(띠)를 사용해 '오름’ 모양을 본뜬 유선형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바람에 잘 견디고 습기에 강한 재료인 새(띠)를 촘촘히 덮은 뒤 새(띠)로 만든 집 줄로 지붕을 바둑판처럼 얽어매는 것이 제주 초가지붕 잇기의 특징이며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초가집을 가난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여 초가집들을 허물고 지붕을 슬레이트와 기와지붕으로 바뀌어서 70년대가 되면서 제주에서 초가집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지금 제주에는 제주 전통의 초가집으로 성읍민속촌이 남아서 초가집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고 그 후 표선에 제주민속촌이 생겼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제주의 전통초가집을 보러 찾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띠(새).

띠(새)는 벼과 띠속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우리말 띠는 한자 띠 모(茅)자에서 비롯되었는데 곱(고운), 삐기, 삘기, 띄 등으로 불렀다.

띠는 전에 삐로 불리던 것이 일제강점기시대부터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띠’를 ‘새’라고 불렀고 봄에 ‘새’가 꽃이 핀 것을 ‘삥이’라고 불렀다.

‘삥이’는 단맛이 조금 나기 때문에 당시 아이들에게는 좋은 군것질 거리이기도 했다.

꽃은 5~6월에 은백색 비단 털처럼 생긴 꽃들이 고깔모양의 꽃차례에 다닥다닥 핀다.

띠는 여느 초본 식물과는 다르게 꽃차례가 매우 우아하다.

잎은 꽃이 피기 전에는 부드럽지만 꽃이 진 후에는 질기고 가장자리가 날카로워 손이 베일 정도이고 꽃이 진후에 1m정도까지 길게 자란다.

제주에서 초가지붕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잎은 다자란 잎을 가을에 채취하여 사용한다.

줄기 마디에는 흰색의 긴 털이 있고 뿌리줄기가 널리 퍼져서 무리를 지어 자란다.

열매는 영과(穎果 : 화본과 작물의 열매로 과피가 종피에 착 달라붙어 있다.)라고 하는데 초식동물에 의해 씨가 널리 퍼트려진다.

띠(새)는 예초를 해주거나 불을 놓아서 태워주는 식물이다.

제주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이 되면 새(띠)나 어욱(억새)이 자라는 들판에 불을 놓아(제주에서는 방애를 놓는다고 한다.) 진드기 등 가축에게 해로운 기생충을 죽이고 봄철 새롭게 자란 풀을 가축의 먹이로 사용을 하며 불에 탄 곳에서 자라는 고사리 등을 채취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풍습을 본떠서 매년 정월에 새별오름에서 들불축제를 개최하는데 지금은 들불축제가 전국에서 손꼽히는 축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띠나 억새는 불을 놓으면 묵은 잎은 타버리지만 뿌리는 타지 않으므로 한 곳에서 오랫동안 자란다.

이러한 성질을 가진 띠는 토양침식을 방지하여 토양을 안정화하고 자원식물로 가축이 먹이가 되고 초가집 지붕을 이는 재료 등으로 활용가치가 아주 큰 식물이다.

띠(새)는 도로의 비탈면이나 붕괴지를 피복하는데 유용한 식물이고 들판을 아름답게 만드는데도 한몫을 하는 사람이나 가축, 생태계에 고마운 식물자원이다.

 

 

한비 김평일 한라야생화회 회장은..

   
한비 김평일 선생

한비 김평일(金平一) 선생은 지난 40여년동안 도내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다.
퇴직 후 (사)제주바다사랑실천협의회를 창설, 5년동안 회장직을 맡아 제주바다환경 개선에 이바지 했으며 지난 2015년도 한라일보사가 주관한 한라환경대상에서 전체부문 대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전국 실버인터넷경진대회(2002년)에서도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교직근무시에는 한국교육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에 취미를 가지고 풍경사진 위주로 제주의 풍광을 담아 오다 제주의 들꽃에 매료되어 야생화 사진을 촬영하고 있으며 현재 한라야생화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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