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최익현과 이기온 선생 향사 제단..연동 문연사(文淵社)터
상태바
[향토문화]최익현과 이기온 선생 향사 제단..연동 문연사(文淵社)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11.21 0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귤암 선생의 문하생들은 일본강점기 조설대 집의계의 주축이 되었다.

연동 문연사(文淵社)터

위치 ; 제주시 연동 제주mbc와 옛북제주군청 동쪽 길 가운데이다. 팽나무와 소나무, 대나무가 우거진 곳에 文淵社址임을 알리는 조그만 표석이 있다.
유형 ; 위인선현유적
시대 ; 일본강점기

 


문연사는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참판의 유적과 귤암 이기온(橘巖 李基溫)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1년 1월에 그의 제자들과 志士들이 귤암의 유허인 오라동 2951번지에 시설하여 享祀하던 祭壇이며 귤암의 비는 면암 참판 유배시 유필을 음각한 것이다.


귤암은 광해군에 직간하다 유배된 충신 간옹 이이(艮翁 李瀷)의 후손으로 제주에 유배온 면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향리 후진 교육에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또 귤암 선생의 문하생들은 일본강점기 조설대 집의계의 주축이 되었다.

이 곳 문연사는 1977년 5월 신제주가 건설되면서 도시계획에 저촉되어 현재의 위치(오라동 조설대 경내)로 옮겨졌다. 지금도 여러 후학과 뜻있는 분들이 음력 정월 중정(中丁)에 제를 지내고 있다.(현지의 안내판)


현재의 문연사에는 '橘堂李先生'이라 새겨진 비석과 제단을 중심으로 글씨가 새겨진 5개의 돌이 있다.

왼(동)쪽으로부터 '橘巖 師長樹 抱且拜 丈人石 感無極', '愛敎臺', 귤암 선생의 행적을 적은 돌, '養魚付井', '□□□□□□'(깨어져서 글자 일부만 보임) 등인데 모두 자연석을 한 면만 평면으로 다듬어서 음각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