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언덕은 도회지의 벽돌 건물보다 언제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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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언덕은 도회지의 벽돌 건물보다 언제나 아름답다."
  • 고현준
  • 승인 2019.12.0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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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15코스, 난대림화장실-고내포구,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선비의 길'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내 앞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내 뒤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내 아래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내 둘레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나바흐 족 인디언노래

 

올레길을 걷다보면 신이 창조한 자연을 감사한 마음으로 노래한 인디언들의 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은 다만 신이 만들고 주신 모든 것을 먹고 마시면서도, 또 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는 자기 모순에 빠지는 반복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못 마실 정도로 지하수가 오염이 됐다고 하는데 숨골에 양돈분뇨를 갖다 붓고, 쓰레기는 더 이상 처리할 능력이 안 된다는데 우리는 매일 쓰레기를 배출해낸다.

음식물쓰레기는 현재 처리할 방법조차 없는데 식당이나 가정에서는 매일매일 음식물쓰레기를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아무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질 생각도 하지 않고, 더욱이 대안조차 하나 변변히 내놓지 못하는 것이 지금 제주도의 현실이다.

결국 신은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지만 아무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망가뜨린 것도 우리들 인간이고, 지옥같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들이다.

예전에는 어디서나 모두 마실 수 있던 용천수나 봉천수가 제주에서는 이제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지금, 지나다 만나는 어떤 물도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었다.

위에 소개한 수백년 전에 불리웠을 인디언의 노래는 이제 제주에서조차 전설 같은 노래가 되고 있다.

올레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들어야 하는 마지막 신음소리인지도 모른다.

 

지난 7일은 제주올레15코스의 나머지 반 코스인 난대림화장실-고내포구까지 걷는 날이었다.

함께 올레를 걸었던 난전 강법선 선생은 12월 중에는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요즘 꼼짝하지 못한다고 하여 올레친구인 고광언과 둘이만 다니는 중이지만 난전 선생도 빨리 합류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는 중이다.

이날 납읍리 금산공원 앞 난대림화장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13분이었다.

출발스탬프를 찍으려고 보니 지난 주에 화장실 사용을 금지한다고 걸어놓았던 현수막이 사라지고 없었다.

올레꾼들의 편의를 위해 당분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화장실은 장애인용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지만 급한 사람들은 큰 도움이 될 듯 했다.

애월읍 담당직원들에게 문의해 보니 ”화장실 토지는 개인소유이고 건물은 애월읍이 건설한 것이라 토지주와 협의를 거쳐 내년에도 계속 사용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납읍리는 선비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왜 선비마을일까. 그것도 궁금했다.

 

다음은 마을소개에서 소개하는 납읍리 내용이다.

 

마을위치

納邑里(납읍리)는 자연환경이 아름답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영기 뻗어내린 서북쪽 30km 아래요 북쪽은 해안에서 2.5km 위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 지형이 기묘하니 동북에서부터 애월 건마루 마이동산이 남쪽 금산으로 이어지고 검은 닭마루 무지동산 꿩장이 고개가 서북으로 돌아오는 육선으로 이어져서 마치 병풍을 두른 듯이 수려하며 광활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 능선 너머로는 서쪽에 143m 높이의 於道峯(어도봉)이 손짓하고 동북쪽으로는 높이 175m의 高內峰(고내봉)이 마주하며 정북으로는 153m의 郭岳(곽악)이 마을의 지반을 받쳐 주고 있어 흡사 옥쟁반을 펴 놓은 듯 하다.

지난날 풍수지리설을 숭상하던 시대에는 갖가지 일화도 많았다.

그 일례를 들어보면 고내봉은 向立(향립)하니 신관을 영입하는 형이요, 곽악은 배립하니 구관을 배송하는 형으로 곽악의 활등 弓背(궁배)가 이어져 어사화를 꽂은 듯 하므로 과거가 연출한다고 하였다.

 

 

납읍리 마을소개

 

558가구에 1,357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납읍리는 서상동, 서중동, 서하동, 동상동, 동중동, 동하동 등 6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부터 서당이 설치되어 20여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는 등 문인의 마을이라 할 수 있는 납읍리에는 일만평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 난대림식물 20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

예부터 선인들이 글을 짓고 시를 읊던 금산공원(국가지정 문화재 제375호)이 있어 선조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감귤을 재배하고 있으며, 유서깊은 마을답게 곳곳에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가 있어 마을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문화와 민속이 살아있는 마을 납읍리이다.

 

과납서당은..

납읍리는 조선조 중기 이후 중앙무대에서 20여명이 과거급제자가 속출함에 따라 문촌으로 도내외에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되며 어떤 과거 응시생은 이웃마을에서 우리마을로 와서 학문을 배우며 우리마을 출신으로 응시하여 급제한 분도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옛날 우리 마을에는 많은 훈장선생님과 서당이 있어 사학의 중심지였다고 볼 수 있으며 19세기 이후 우리 마을출신 서당 선생님들이 납읍향토지 기록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지난 1998년도에 북제주군에서 우리마을에 과납서당을 인가 현판을 달고 마을에서 훈장을 선정하여 방학기간에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납읍리사무소가 있는 곳만 해도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이 마을의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듯 보였다.

효도시범마을이라는 석비가 있는 그 바로 옆에는 이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품을 판매하는 무인판매대가 놓여있다.

마른 쑥이나 고사리 등을 담아 2천원씩 파는 곳이었다.

 

길을 따라 내려오자 공동정호(새못)이라는 큰 연못이 나타났다.

 

공동정호는 납읍리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1937년도 본리 김중선 도로감(옛날의 애월면 도로 총감독)께서 새못을 만들기 위하여 정사각형 1말짜리 말을 만들어 무우를 정사각형으로 잘라서 한조각 한조각을 붙여 쌓아 올려보고 공동정호를 만들려면 규격화된 돌이 몇 덩어리가 필요하다는 계산하에 마을 각호마다 일정하게 맞는 규격이 돌을 다듬어 갖고 오도록 하여 큰못과 작은 연못 2개를 만들어 물이 밑으로 통할 수 있도록 했다.

방아돌을 5등분하여 물을 길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하였고 예술적 가치를 더 해주고 있으며 큰못에서 작은 연못으로 이어지게 만든 부분에 대하여는 옛 조상들의 지혜를 찾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며 1973년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사장물과 함께 마을 공동식수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이 연못은 아주 넓고 컸고 석비에는 위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연못 중간 지점에는 정각까지 있어 풍치를 더하는 곳이었다.

이 마을을 지나는 동안 곳곳에 오래된 팽나무가 곳곳에 자리잡아 마을의 품위를 더했다.

 

마을을 지난 조금 걷다가 만난 큰 길 옆에 서 있는 돌담..

석비가 있어 읽어보니 4,3유성이었다.

 

전도에 4.3사건이 발발하자 마을주민은 무장대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초소를 만들고 당번을 서면서 경비를 하던 중 1948년 11월 17일 소개령이 내리자 마을주민들은 정든고향을 버리고 인근해변마을로 피난을 갔다가 1949년 4월 29일 소개령이 해제되자 소개 갔던 주민들은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치안상태가 극도로 불안한 시기라 지금 사장(금산학교마을)터에 모여 살게 되었고 무장대들이 잦은 출몰로 가옥에 방화, 소, 말, 양식 등을 약탈 당하자 성을 쌓아 무장대들을 방어하기로 하여 온 마을 주위를 원형으로 한바퀴 쌓았으며 성이 높이는 약4m 25개소에 초소를 설치 하는 등 사람이 출입을 철저히 통제 하였다.

지금은 둘레성은 사라지고 북문~빌레못경 사이 약300m만이 남아서 당시 참혹한 상황을 묵묵히 지켜주는 듯하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조금 더 걸어 오솔길로 들어서 다시 이어진 길은 백일홍길.

 

올레표지판은 여름 내내 붉은 꽃이 피는 베롱나무(백일홍)는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고 뿌리가 길게 뻗지 않아 무덤가에 많이 심는다. 이 길에서 무덤을 지켜주는 백일홍을 만날 수 있다. 나무껍질로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이기 때문에 간즈름나무라고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올레길은 과오름으로 직접 안내했다.

과오름을 지나는 동안 한라산은 구름에 막혀 보이지 않았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는 멀리 비치는 구름속 광명을 보여주고 있었다.

 

 

15코스에 있는 오름은 과오름과 고내오름이지만 둘다 옆으로 둘레길만 걷는 코스였다.

오름 정상에는 가 보지 못했지만, 올레길에서 멀리 보이는 녹고뫼오름 위로는 햇살이 환히 비추며 제주라는 곳을 빛내고 있었다.

과오름을 옆길을 지나 만나는 올레길은 계속 숲길이었다.

멀리 보이는 애월항..

제주도에 공급되는 LNG 공급기지가 바다에 우뚝 서 있다.

 

 

숲길을 따라 계속 가니 고내오름이 바로 눈앞이다.

고내오름(고내봉) 둘레길은 예전에 이곳을 지날 때 노루식구가 떼지어 지나던 곳인데 이번에 보니 길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놓은 상태로 변해 있었다.

주변에는 대형 주거지가 들어서 있고 고내오름을 오르는 중간길에는 누군가 땅을 만들려 하는 듯 공사가 살금살금 진행중이었다.

예쁘게 포장된 길..

찻길로는 좋아보이지만 애석하게도 풋풋한 인간미는 없는 길로 변해 버렸다.

 

 

고내포구를 향해 가는 길은 예전에는 늘 마을 중간 길로 들어서서 내려가는 바람에 제대로 된 올레길을 가지 못했는데..

이번에 걸어 보니 '배염골 올레'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올레길이 거기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뱀이 많이 나오고 비가 오면 물이 넘쳐 사람들조차 외면했던 길이었으나, 제주올레에서 정비해 가장 아름다운 올레로 거듭나게 되었다. 뱀은 제주말로 배염이라고 한다는 올레설명이 놓여져 있었다.

이 길을 걸어보니 진짜 뱀이 많이 나올 것 같은 무서운(?) 길로 느껴질 정도로 으스스했다.

 

 

길 양쪽은 돌담이고 얕으막한 풀이 자라는 길이라 그런지 어디선가 불쑥 하고 뱀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길이었다.

이 길 마지막 지점은 온통 돌밭이었다.

사실, 이런 길이 진짜 올레다.

추운 날씨였지만,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고내포구에 도착했다.

시간은 10시40분 ..1시간 30여분 정도만 걸은 것 같다.

고광언은 “날씨가 너무 추워 평소보다 빨리 걸었다”며 “오늘 7천보 정도로 생각보다 많이 걸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날 걷기를 끝내고 환경파괴 제보가 들어온 서귀포 효돈으로 향했다.

 

다음은 수백년전 말해진 인디언 추장의 이야기를 전한다.

 

“산과 언덕은 도회지의 벽돌 건물보다 언제나 아름답다.

당신들도 그것을 알 것이다.

도시 속에서의 삶은 인위적이고 가식적이다.

사람들은 흙을 거의 밟아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으며, 꽃나무라고 해야 화분에 심어진 것 뿐이다.

그리고 보라, 별들로 수놓인 밤하늘 대신 거리의 불빛이 시야를 빼앗는다.

사람들이 자연을 만드신 이의 풍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살아갈 때 그분의 법칙을 잊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믹맥족 추장의 연설 중에서..

 

올레길은 제주도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상징도 무시하고 버려진다면 제주도의 아름다움도 함께 사라지게 되고 말 것이다.

제주도민 모두가 올레길을 함께 걸으며 올레가 아름다운 제주도의 상징으로 남고, 더 이상 개발이라는 괴물에 제주도가 먹히지 않도록 나서야 한다.

올레를 걸으면 제주도가 다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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