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마을 재건때 세운 교회..봉개동 함명교회종각(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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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마을 재건때 세운 교회..봉개동 함명교회종각(이동)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12.10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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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개리 재건은 소개당한 마을 중에 처음으로 복구 이뤄져

봉개동 함명교회종각(이동)
 

위치 ; 제주시 봉개동 봉개교회 구내
유형 ; 종교건물(종각)
시대 ; 대한민국

 


1948년 11월 20일경 봉개 마을이 초토화되면서 오갈 데 없는 주민들이 인근 야산과 불타버린 집터에 움막을 짓고 피난살이를 했다.

일부 화북, 삼양 등 해변마을로 피난간 주민들도 '산간 사람은 다 죽인다'는 소문과 해변마을을 습격한 무장대의 인솔에 따라 다시 산간으로 올라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낮에는 야산에서 밤에는 불타버린 집에서의 생활을 반복하던 봉개리 주민들은 1949년 2월 4일 군경대 토벌로 대거 희생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깊은 산중으로 숨어 들어가서 또 많은 주민들이 쫓기다 죽어갔다.


봉개리 초토화 이후 삼양, 화북 등지로 피난갔던 봉개리 주민들은 1949년 7월 재건 명령에 따라 서부락을 에워싸는 축성을 한 후 성안에 함바집을 짓고 살았다.

봉개리 재건은 소개당한 마을 중에 처음으로 복구가 이뤄져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다뤄졌고, 제2연대의 주민 선무공작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었다.

이것은 제2연대장 함병선 대령이 4 3 진압작전을 마치고 해안지대로 소개했던 주민들을 원거주지로 복귀시키는 사업의 일환이었다.

특히 2연대장 함병선(咸炳善)의 성(姓)과 작전과장 김명(金明) 대위의 이름을 따서 마을이름을 '함명리(咸明里)'로 개칭하였다.


성안에는 십자로(十字路)를 새로 뚫어 십자로 사방으로 함바집을 짓게 했다. 지금도 그 십자로의 길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당국에선 일부 건축자재를 보조하거나 벌채를 허가해 복구를 돕기도 했다.

마을 재건 당시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 이름도 '함명교회'였다. 함명교회를 지으면서 종각과 종을 매달았는데 함명교회의 위치는 바뀌고 건물도 새로 들어섰지만 종각과 종은 그대로 옮겨져 지금의 봉개교회 입구에 세워져 있다.(한라일보 2008. 05. 20.)


2009년 6월경 종이 철거되었다가 그 후 봉개동 처낭가름에 새 건물을 짓고 거기에 종을 다시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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