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선인장 마을..월령리 무명천할머니(진아영)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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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선인장 마을..월령리 무명천할머니(진아영) 집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12.12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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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이 뜻을 모아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조직했다

월령리 무명천할머니(진아영) 집


 

위치 ; 한림읍 월령리 380번지
유형 ; 가옥
시대 ; 대한민국

 



한림읍 월령리. 수십 년을 혼자 살았던 故 진아영 할머니. 늘 무명천을 턱에 두르고 있어 사람들은 '무명천 할머니'라 불렀다. 무명천 할머니에게는 턱이 없었다.

1949년 1월 35살의 나이에 북제주군 한경면 판포리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졌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때 턱이 날아가 벌린 것이다. 날아가 버린 것은 턱만이 아니었다. 아리따운 청춘과 정신 그리고 삶 자체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제대로 말할 수도 먹을 수도 없는 할머니는 그 날의 공포를 지고 평생을 살아왔다. 진 할머니는 그 고통의 턱을 감추기 위해 평생 무명천을 두르고 다녔다. 음식을 먹을 때도 물 한잔을 마실 때도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음식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진 할머니는 진통제와 링거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고통을 겪으며 모질게 살아왔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4·3의 비극을 반증하듯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핍박받는 삶을 살았다. 할머니의 삶은 마지막까지 순탄치 않았다.

월령리에서 홀로 지내던 그는 병세가 악화되자 2년 반 동안 이시돌요양원에서 요양을 받으며 4·3 후유 장애와 더불어 심장질환과 골다공증 등 노환으로 하루도 편치 않았다.

시대가 바뀌어 4·3특별법이 제정되고, 4·3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시절, 평생의 한을 이제야 풀 수 있는 호시절이 왔지만 진 할머니는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2004년 9월 8일 오전 9시 5분 90세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묘는 성이시돌목장내 새미소오름에 마련되었다.


그런 할머니에게도 30여 년을 살았던 집이 아직 남아 있다. 선인장마을로 알려진 한림읍 월령리 380번지를 주소지로 둔 할머니 집은 생전에 결혼하지 않아 슬하에 자식이 없던 그녀를 위해 일가친족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련한 거처라고 한다.

그 집안에는 할머니 체취와 함께 처녀시절 사진과 하얀 무명천과 옷가지, 열쇠꾸러미들이 녹이 슨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마당 수돗가에는 빨래판과 빨아 짜 놓은 걸레 고무 물통, 알루미늄 양동이, 세수대야 등이 그대로 있어 잠시 외출한 것처럼 느껴진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한때는 할머니 집을 보존해서 그녀를 기억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가 사라졌다. 그러다 2005년 9월 8일 할머니 2주기 추모제에 맞춰 할머니 집을 유적지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약자였고 소수자였다.

그런 할머니가 이념의 대립과 전쟁으로 치달았던 역사의 갈등들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몸소 보여줬던 것에 대해 그 누구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제민일보 2005년 5월 23일)(이영권의 홈페이지)

텔레비전 위에 DVD 플레이어가 있다. 무명천 할머니, 즉 진아영 할머니에 대한 다큐, 박성내에 관한 다큐가 약 40분 동안 나온다.


4·3피해자의 대표적인 상징인물인 진아영 할머니를 통해 4·3후유장애 문제를 제기하고 형식화된 4·3사업에 대해 반성하자는 개인들이 뜻을 모아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조직했다.

개개인의 작은 모금운동으로 4.3사업의 전형을 마련하는 등 형식화되어가는 4·3사업을 반성하기 위해 2007년 12월 조직된 보존위원회는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의 할머니가 살던 집을 소박하고 작은 박물관 형태로 개조, 할머니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제주의소리 2008년 2월 14일)
 

 

 

관련 시 몇 편을 소개합니다.



무명천 할머니
-허영선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 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 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그녀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 바다로 가 꽂히고

어둠이 깊을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 깊은 고통을 진정 알 길 없네
그녀 딛는 곳마다 헛딛는 말들을 알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베롱한 세상
한 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명천 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

故 진아영 할머니 집에 서서

김미희


제주도 한림읍 월령리 8평
무명천 할머니 집

방에 놓인 두 개의 영정

이름도 고운 달덩이 같은
전기세 고지서에나 찍혀오는 이름 진아영 씨
건국총알에 턱을 잃어 물 한 잔 밥 한 술
홀로 홀로 드셔야했던 무명천 할머니

할머니 방에 서면 누구나 묻고 싶어진다
할망은 무사 무명천 둘러수꽈?

무명천을 두른 진아영 할머니는
아직도 까닭을 모르시나보다 말이 없다
그 순한 눈으로
얘기 좀 해달라고
되려 나를 보고 묻는다

치가 떨려도 치를 떨 수 없었던 할머니
파도소리가 우렁우렁
할머니 대신 울어주는 할머니집 앞에 서서
이제 우리, 답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왜 진아영 예쁜 이름 두고
無名 할머니로 살아야했는지


〈4·3 60주년 기념 전국 청소년 문예작품공모 시 대상〉


무명천 할머니, 이제 다녀오세요
경기도 용인시 기흥고 3년 김경주


할머니, 이제 그만 시름 푸시고 먼 길 다녀오세요
진실은 조각난 당신의 턱처럼 여전히 주검 같이 누워있네요
당신이 가린 수많은 죽음 눈동자처럼 울고 서 있는 넋 놓고 간 슬픈 메아리가 있네요

도화지 같은 제주 바다는 푸르지 않은 것 같아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색칠이 많아서
연거푸 칠해도 여전히 붉디 붉어요
그래도 바다를 보고 계시죠
여전히 제주의 바다는 아름다우시죠
바위에 아기를 매쳐 죽이고 대나무에 송글송글 핏방울이 맺힌 걸 보면
제주의 바다는 그 자체가 파랗게 멍울진 매 자국 같아요.

할머니, 그래도 무명천을 벗겨 드릴래요
긴 터널을 지나 광명 같은 곳으로 다녀가시게 할래요
하지만 무명천은 두고 가세요
베옷처럼 거친 당신의 심금 위에 그대로 두고 있을 게요
사람들은 말하죠 어쩌겠어요.. 어쩌겠어요..
그러니 할머니도 이제 그만 두고 가세요
잃었던 말을 찾아 광명 같은 곳으로 가 계세요
당신이 한참 후 그 말을 찾아 다시 오시는 날
제주의 얼굴도 새로운 살이 돋아 있겠죠
그러면 그 생기를 찾아 당신의 입술 위에 덧칠해 드릴게요
할머니, 이제 한참을 돌아 생령처럼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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