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학교 건축 목재 지원..중문동 중문중학교군인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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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학교 건축 목재 지원..중문동 중문중학교군인기념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12.24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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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4월 2연대 1대대장 전부일의 공로 치하..학교이름도 '전부중'으로 사용

중문동 중문중학교군인기념비

위치 ; 중문동 1935번지 중문중학교 교정
유형 ; 비석(기념비)
시대 ; 대한민국

 

 


중문중학원은 1945년 10월 4일 중문동 1584-2번지 당시 향사(설립 당시 입학했던 이치근 씨는 중문초등학교 교실을 하나 빌려 개교했다고 함. 국민학교 교실 2개를 향사로 빌려 썼던 것)였던 곳에 설립되었다.

3년 과정이었다. 초기 중학원 터는 현재 이순원씨 과수원이다. 당시 흔적으로는 학교 울타리였던 돌담이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제주도에서는 해방이 되자 지방 유지나 지식인들은 교육 정책을 시급한 과제로 삼고 중학원과 초등학교를 속속 설립하였다.

이승조씨를 원장으로 김문규(월평 출신. 후에 제주교대 학장 역임), 이경주, 원문상, 강원철, 강두학 등이 교사로 있었다.

이승조 원장이 그만둔 뒤로는 이북 출신 전문규 교사가 교장 서리로 있으면서 악명을 날리기도 했다.

그 후 1947년 7월 18일에 중문중학학술강습소로 개설 인가를 받았다. 당시 중문중학원에 근무했던 교사 중 원문상, 이경주 선생은 예비검속되어 행방불명되었고 강원철 선생도 행방불명되었다.


1948년 11월 5일 아침 무장대의 중문 습격 당시 교실과 직원실이 모두 소실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 후 1950년 4월 2일 학교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지원한 2연대 1대대장 전부일의 공로를 치하하는 뜻에서 학교 이름을 ‘富文中學校’로 하고 중문동 1935번지에서 정식 인가를 받았다. 1951년 9월 1일에는 중문중학교로 다시 수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4·3 당시 2연대 1대대가 서귀포에 주둔하면서 중문리에는 4중대 4소대가 주둔했다. 이 때 대대장은 전부일, 중대장은 남백봉, 소대장은 서봉호였다.

지역 주민들은 중문중학교를 재건하는 데 적극적으로 목재를 지원해 주었다고 하여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비문은 다음과 같다.


전면 ; ‘紀念碑’ 陸軍中領 南白峰 陸軍大領 全富一 陸軍所領 徐峯虎
우측면 ; 檀紀 4286年 11月 10日 謹竪
좌측면 ; 贊助者 康錫用 高泰烋 高己生 李太昊 林漢珍 金性浩 玄文叔 趙信烽 梁潤澤 李浩珍 姜元周 邊益補 金東河 任珍弼 高奉萬 金炳澤
뒷면 ; 沿革 1. 檀紀 4279年 10月 18日 中文中學院 改設 許可
1. 檀紀 4283年 4月 2日 富文公立中學校 認可 創設者中 別히 功勞 偉大한 陸軍大領 全富一씨의 姓名 一字를 取하여 富文公立中學校라 칭함.
1. 檀紀 4284年 9月 1日 中文中學校로 改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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