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나라꽃으로 관습화돼 있지만 전형적인 표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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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나라꽃으로 관습화돼 있지만 전형적인 표본이 없다."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19.12.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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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나라꽃, 무궁화는 우리 꽃인가? 어떤 모양인가?

나라꽃, 무궁화는 우리 꽃인가? 어떤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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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나라꽃, 코와이 (Kowhai) 콩과, 학명 Sophora tetraptera var. grandiflora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으스스한 계절, 만추의 11월에 뉴질랜드를 다녀왔습니다. 북위 37.6˚에 있는 서울의 11월은 겨울의 문턱에 이르는 계절이지만 남위 33˚~53˚에 걸쳐 있는 뉴질랜드는 여름으로 넘어가는 늦봄의 계절이었습니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초목이 생동의 절정기를 맞아 한창 꽃과 잎이 피어나는 봄철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5월인 셈입니다. 새삼 세상은 넓고 우리의 견문과 상식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질랜드 남섬의 밀퍼드 사운드와 마운트 쿡의 비경(祕境)을 답방하고 남섬의 동부 해안 크라이스트 처치를 향하여 캔터베리 대평원을 지나갑니다. 남북으로 450km에 걸쳐 뻗어 있는 서든 알프스산맥의 능선은 하얀 만년설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 아래 펼쳐진 캔터베리 대평원에는 목초가 파릇파릇한 푸른 벌판에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 이발소 벽에 걸린 액자 속 그림을 보고 ‘세상에 저런 곳도 있을까?’ 했던 그 그림을 보는 듯했습니다.

스쳐 가는 차창 밖 벌판과 야산 기슭에는 개나리처럼 생긴 서양골담초가 노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사이 아까시나무처럼 생긴 노란 꽃을 달고 있는 꽃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산야에 넓게 펼쳐진 황금 꽃나무, 바로 뉴질랜드 나라꽃 코와이(Kowhai)라 합니다.

코와이는 콩과 식물로서 뉴질랜드와 칠레 남쪽에 분포하는 상록수입니다. 10월이나 11월 개화 직후에 대부분의 잎을 잃지만 신속하게 새잎을 만듭니다. 높이는 10m에 달하고 꽃은 황색으로 가지 끝에 총상꽃차례로 달려 커다란 황금 꽃 더미처럼 보입니다. 하천 옆과 숲 가장자리, 저지대 또는 산기슭 등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나무라 합니다.

어디서나 야생으로 잘 자라며 전국에 펼쳐져 있는 토착 자생종인 뉴질랜드 나라꽃, 코와이를 보며 우리나라 나라꽃, 무궁화를 다시 한번 되새겨 생각해봅니다. 국화(國花), 나라꽃(national flower)은 ‘나라를 상징하는 식물과 꽃’입니다.

나라꽃은 법령으로 제정한 나라들도 있으나 그 나라의 자연·풍토·역사·문화와 관련이 깊은 식물이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제연합(UN)에 가맹한 160여 개 독립국이 모두 국화를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영국도 법으로 정한 나라꽃은 없습니다. 중국,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매화 또는 모란이 중국 나라꽃, 벚꽃(벚나무)이 일본 나라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국가에서 공식 지정한 나라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공식으로 나라꽃을 지정한 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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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Hibiscus syriacus) 함박꽃나무(Magnolia sieboldii K. Koch)

 

 

우리나라 나라꽃은 무궁화입니다. 북한의 나라꽃은 목란(木蘭) 즉, 함박꽃나무입니다. 북한은 김일성 지시에 따라 나라꽃을 진달래에서 함박꽃나무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무궁화는 옛날부터 한반도에 분포되어 오랜 사랑을 받아 왔고 역사적·문화적으로 우리와 깊은 관련성이 있어 자연스레 정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록으로는 조선 말기에 개화 바람이 불어오면서 당시의 선각자 남궁 억, 윤치호, 안창호 선생 등이 무궁화를 통해 민족의 일체성과 반일 감정을 일깨웠고 1896년 11월 ‘독립문 주춧돌 놓기 행사’에서 무궁화가 언급된 애국가가 불리면서 자연스레 나라꽃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 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들은 무궁화를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표상으로 삼았던 역사성이 있어 더욱 나라꽃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국화(國花)는 그 나라의 자생식물(自生植物)로 정해져 있습니다. 자생식물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원래부터 사람의 보호를 받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자라는 식물을 뜻하며 이들의 생육지를 자생지라고 합니다. 그 지역의 식물상에 본래는 속하지 않던 종류가 흘러들어와 그곳에서 자라며 야생화가 되었다 해도 그것을 자생식물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한반도에 자생지를 가지고 있는 식물을 이른바 우리 꽃이라 합니다. 아쉽게도 무궁화는 자생지가 국내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가 인위적인 식재지 뿐입니다. 무궁화는 소위 우리 꽃이라 부르는 한반도 자생식물은 아닙니다.

무궁화는 역사상, 정서상, 문화상 우리의 나라꽃으로 여겨져 온 꽃입니다. 우리 꽃이 아니라 해서 나라꽃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궁화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까지 삼천리강산에 무궁화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말살정책으로 피해를 보아 분포지가 지금처럼 줄었다거나 원산지가 우리나라라고 하는 설들은 사실이 아닙니다. 무궁화의 실제 원산지는 인도와 중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나라꽃이 국내 자생종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보다 더 아쉬운 것은 무궁화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거나 무관심하다는 사실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꽃 이름은 외래종 일색입니다.

나팔꽃, 채송화, 백일홍, 봉숭아, 해바라기, 맨드라미 등등, 그 결과 대부분 사람은 이들이 모두 외래종이 아닌 우리 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궁화 또한 그러합니다. 생물자원의 주권의식이 높아지고 자국 유전자원의 보호 및 관리가 국제적으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국내 생물자원의 보존관리를 위한 자생종의 발굴 증식과 대체 이용을 위해서는 우리 식물을 알고 이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 꽃과 외래종을 식별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야생식물 주관부서는 환경부입니다.

며칠 전 환경부 출신 몇 명과 대화하는 중 식물을 분류하는 ‘생물분류기사’라는 국가기술자격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쉽지만 야생식물 정책의 주관부서 직원 중 생물분류기사(식물) 자격을 갖춘 직원이 몇 명이나 될까? 지극히 의심스러운 것이 현실입니다.

한편,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관습화되어 있긴 하지만 전형적인 표본이 없습니다. 그 결과 하와이무궁화 등 수많은 무궁화속(Hibiscus), 그중에서도 수백 종이 넘는 무궁화(Hibiscus syriacus) 계열 품종 모두가 ‘나라꽃’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합니다.

현재 식재되고 있는 무궁화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기 그지없습니다. 무궁화가 외래종이라서 전형적인 모양이 없는 탓입니다. 다양한 품종개발로 붉은색, 분홍색, 연분홍색, 보라색, 자주색, 파란색, 흰색 등 꽃의 색깔도 많습니다.

또한 배달계, 아사달계, 단심계 등 꽃잎과 꽃술의 형태뿐만 아니라 홑꽃, 반 겹꽃, 겹꽃 등 꽃잎의 모양도 매우 다양합니다. 북한의 나라꽃, 함박꽃나무는 국내 자생종이라서 그 모양이 확실합니다.

우리의 나라꽃 무궁화, 최소한 내·외국인이 식별할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에 관하여 표본이라도 설정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야생으로 널리 퍼져 있는 뉴질랜드의 나라꽃을 보니 이러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2019.12.26.)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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