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원동산 중문성당 동쪽..중문동 헉수기동산 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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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원동산 중문성당 동쪽..중문동 헉수기동산 성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12.26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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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쌓은 시기는 서기1948년말부터 서기1949년초로 추정

중문동 헉수기동산성담
 

위치 ; 중문동 1514번지 일대. 원동산 중문성당 동쪽(백구마을 백구빌라 서쪽으로부터 서남쪽 100여m)
유형 ; 방어유적(성)
시대 ; 대한민국

 

 


'헉수기동산'은 겨울에 하늬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면 흙먼지가 자주 날려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 1948년말 경에 주민들이 쌓은 성이 남아 있다. 현재 과수원 담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길이 100, 폭 0.5~1, 높이 1~2.5 정도 남아 있다. 이 성은 잔돌로 촘촘하게 쌓은 특징이 있다.(제주4·3유적Ⅱ 171~172쪽)


4.3 당시 중문에는 2차례의 큰 습격을 받았다. 1차습격은 1948년 음력 9월경으로 메밀수확기였는데 면사무소(현 우체국)와 향사(중학원)에 방화하고 도망갔으며, 2차습격 때는 이장댁을 방화하고 3명이 피살되었다.

그 후에도 성의 서쪽 정문(백구동네 팽나무 있는 곳)으로 습격하여 마소 90여 마리를 끌어간 적이 있다. 그리고 중문에는 서북청년단원 9명이 살았었다고 한다.(중문동 고경준, 1933년생. 1996년 6월 면담)


전체적인 성의 위치는 동쪽으로는 중문초등학교 동쪽 울타리(2005년 전후에 울타리 교체 공사로 멸실), 서쪽으로는 원동산 천주교 입구 백구마을 백구빌라 서쪽으로부터 서남쪽 100여m, 남쪽으로는 현 중문목욕탕 남쪽 10m 지점, 북쪽으로는 므르왓( 르왓,  랏, 못동네)동산 팽나무 정자 북쪽 10m 지점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서기1948년말부터 서기1949년초로 추정되며, 주민 학생들의 3개월간의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졌었다.(중문중학교, 향토지. 1986.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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