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월라봉 남쪽 절벽 위..감산리 호산망(이두어시망)(봉수대)
상태바
[향토문화]월라봉 남쪽 절벽 위..감산리 호산망(이두어시망)(봉수대)
  • 고현준
  • 승인 2020.01.17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수기정이라 부르는 절벽의 서쪽 위에 해당한다.

감산리 호산망(이두어시망)(봉수대)
 

위치 ; 안덕면 감산리 이두어시마을 서쪽 대흥사 북서쪽. 올레길 옆에 있음
시대 ; 조선
유형 ; 방어유적(봉수)

 

 

호산망(壕山望)은 대정현에 소속된 봉수로 안덕면 감산리 월라봉(ᄃᆞ래오름, 이두봉) 앞 남쪽 해안 절벽 위에 있다.

ᄃᆞ래오름의 남쪽으로부터 동남쪽의 완만한 사면에 넓은 평탄지가 있고 조그만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지역을 이두어시(伊斗於時)라고 부른다.

박수기정이라 부르는 절벽의 서쪽 위에 해당한다.

굴산봉수(堀山烽燧) 또는 이두봉수(伊頭烽燧)로도 불렸으며, 16세기 말의《탐라도》(가칭)에는 壕山望(호산망)으로, 《세종실록》에는 仇山烽火(구산봉화)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堀山烽燧(굴산봉수)로 표기하였다.

그런데 이원진의 《탐라지》(대정현 봉수)에는 壕山烽燧(호산봉수=굴메봉수)가 예전에 굴메 아래에 있었는데 지금 해안으로 옮겼다고 했다.

탐라순력도 한라장촉에는 이두어시망(伊斗扵時望)으로, 1709년의 《탐라지도》에는 伊頭烽(이두봉),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二頭烽(이두봉)으로 표기했는데, 지금의 군산 정상이 아니라 월라봉 아래쪽에 표시하였다.

그렇다면 원래 봉수는 지금의 군산 아래에 있었다가, 나중에는 이두어시로 옮겼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의 방어유적》은 어느 정도 비슷한 위치에 표시했으나, 《남제주군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지금의 軍山(군산) 정상에 호산봉수가 있었던 것으로 잘못 표시하였다.


제주의 봉수대는 일반적으로 산 정상부에 흙 두덩이를 쌓아 주위 지형보다 높게 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호산봉수의 경우는 월라봉 정상에 축조하게 되면 구산 봉수와의 연결이 앞에 있는 군산에 가로막혀 서로 교신이 불가능하므로, 지형은 낮으나 다른 봉수와 연결이 가능하면서 해안 감시가 용이하고 자연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안 절벽을 선택하였다고 추정된다.

호산봉수는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반경 9.5m 원형의 평면이다. 흙으로 쌓은 다른 봉수대에 비해 규모가 아주 작다.

사용한 돌은 자연석으로 구멍이 없고 판상으로 깨어지는 조면암 종류로 보이며, 37×86×63cm, 39×91×56cm, 45×158×63cm 크기의 자연석을 안팎으로 수직으로 축조하여 잔돌끼움한 허튼층쌓기로, 벽 높이는 외벽 1.9m, 내벽 1.1m, 폭은 2.1m 정도이다.

지금은 봉수대 안쪽까지 잡목에 덮여 있긴 하나 모양을 대체로 확인할 수는 있는 정도이다. 가운데 부분이 움푹 내려앉았다.

봉수대 동쪽으로는 별로천연대와 군산, 남서쪽으로 형제도와 송악산 그리고 서쪽으로는 산방산과 산방연대가 있으며, 남서쪽의 저별(貯別;松岳 6.8km) 봉수, 동쪽의 구산(龜山;居玉岳 10.7km) 봉수와 서로 교신했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오름 서쪽 사면 대흥사 남쪽(감산리 849번지)에는 망꾼들이 길어다 먹었다는 샘 망한물(망한이물)이 있다. 올레길이 이 옆으로 통과한다.
《작성 081019, 보완 120630, 19101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