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월라봉 기슭 이두어시..감산리 오색토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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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월라봉 기슭 이두어시..감산리 오색토굴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2.11 0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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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흙을 벽체에 바르면 비단옷에도 묻지 않고 금이 가는 것도 방지할 수 있었다

감산리 오색토굴터

 

위치 ; 안덕면 감산리 속칭 '이두어시'
시대 ; 조선(추정)
유형 ; 생산기술유적

 

 


감산리 월라봉 기슭 속칭 '이두어시'라는 곳에는 오색토(黑·赤·黃·白·靑)가 생산되었다. 우선 이 흙을 재발견한 감산리 오성용씨의 글을 인용한다.


〈종이문화가 미숙한 속에서 오색토를 발굴하여 우리 건축 문화를 일으켰던 선대의 정신, 그것은 분명 주거문화의 획기적인 발달이라 할 수 있다.

이 흙을 벽체에 바르면 비단옷에도 묻지 않고 금이 가는 것도 방지할 수 있었다. 본인이 수거한 종류로는 18가지로써 취향에 따라 벽체를 처리할 수 있어서 무색문화에서 색채문화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오색토굴은 입구가 양갈래로 되었고 처음 시작하는 곳은 누룩돌(모래가 응고되어 돌이 된 암반)을 뜷고 8m 전도 들어가면 거대한 흙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좌변으로는 백토굴이라 전하고 있으나 무너져 버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백토굴의 상황을 먼저 알아야 되겠지만 이는 개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오른쪽으로 보면 대형차가 교차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굴이 보이고 양쪽으로는 장소에 따라 흙의 색채가 변하고 마지막 끝에 갈수록 흙의 색채는 황홀할 정도이다. 빨간 색채의 선이 벽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 빨간 흙은 열을 가했을 때 500℃에서 산화한다고 한다. 이 흙 속에서는 생물체를 발견할 수 없으며 곳곳에 웅덩이가 있는데 말 그대로 명견지독(?)이다.

굴은 우리 선조들이 팠다고 해도 문제는 불소이다. 화산분출로 인해 소멸되어야 할 불소가 있는 점이 이상하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이 흙을 이용하여 그릇을 만들었던 장소가 없는 것이다. 한국도자기연구소에 보내어 시험해 본 결과 800℃에서 녹아 버려서 1200℃까지 올려야하는 도기를 만들기는 어려운 것이다.〉


오성용씨의 말을 빌리면 감산리 사람들은 이곳의 흙을 파서 법환리에서 고산리까지 팔았다고 한다. 도배지가 귀하던 시절 고운 오색토를 이용하여 건축을 마감했던 자연을 이용하는 지혜가 엿보인다.


사진에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이 굴 입구였다고 하며 그 뒤로 밭의 서쪽 경계선까지 가면 자연굴이 있는데 그 굴 속에서는 지금도 오색토를 볼 수 있다. 사진에서는 돌처럼 보이지만 흙이 단단하게 뭉쳐진 것이어서 쉽게 부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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