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걷듯, 또 다른 삶의 길을 찾아 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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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걷듯, 또 다른 삶의 길을 찾아 가는 마음으로.."
  • 고현준
  • 승인 2020.02.12 0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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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19코스 북촌포구-서김녕코스는 청보리가 따뜻한 '바람의 길'

 

 

 

거대한 바람개비의 굉음이 귓전을 계속 때렸다.

불과 10여분..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올레길을 걷는데 만난 이 바람개비 소리는 마치 비행기의 소음처럼 모두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난전 선생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비행기의 굉음처럼 멀미가 날 정도”라고 혀를 찼다.

“올레꾼들이 바람 부는 날 이 길을 걸으면 대단히 겁이 나겠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제주올레 19코스가 지나는 동복.북촌 풍력발전단지를 굉음으로 흔들고 있는 그 거대한 바람개비 소리는 정말 겁이 날 정도로 요란했다.

아마 주택가에 이런 시설이 들어선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바람을 가르는 그 소리에 거의 미쳐버릴 정도였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그림 같아 보여도 가까이에 가면 이처럼 실질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오름 주변을 할퀴고 바다를 가득 메우며 세워지고 있는 제주도의 풍력발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볼 때다.

 

 

지난 8일은 제주올레19코스 북촌포구에서 서김녕 해안까지 걷는 날이었다.

이날 올레길은 난전 강법선 선생과 올레꾼 고광언과 셋이 함께 걸었다.

이날 출발점인 북촌포구에서 처음 만난 풍경은, 북촌포구 안에 있는 도아치물이라는 용천수였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사람의 발길이 끊겼어도, 아마 여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멱이라도 감고 있으면 참으로 잘 어울렸을 그렇게 좋은 물이었다.

난전선생은 이 용천수옆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를 가리키며 “나무가 다 썩었다”고 했다.

나무가 썩었다는 것은 이미 의자로서의 효용이 다 사라져 버렸다는 얘기이지만 염분을 머금게 되면 나무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같았다.

그러나 다려도가 포구 밖으로 보이는 북촌포구는 평화롭기만 한 곳이었다.

 

 

이 마을길을 걸어 나와 올레19코스 하프코스의 중간 이후는 계속 들길과 숲길만 이어진다.

바람이 많이 불었고, 곧 비라도  쏟아질 듯한 날씨였다.

이런 날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숲속길을 걸었다.

만약 해안도로로 나서는 길이었다면 걷기에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이 코스는 동복리 자원순환센터가 만들어진 옆으로 들어가야 하는 음습한 길을 걸어가는 코스였으나 지금은 센터가 만들어지면서 우회하도록 코스가 변경돼 있었다.

센터 입구를 바라보며 대로를 조금 더 지나 집 몇 채만이 보이는 마을 쪽으로 들어서는데, 어느 집 정원에 매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이제 봄이 가까워졌나 보다.

붉고 하얀 매화가 함께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비가 올 듯도 하여 모두 우산을 챙기고 걸었지만 다행히 많은 비는 내리지 않아 우산을 쓸 일은 없었던 이날의 올레걷기.

19코스 중간스탬프가 있는 이 마을운동장을 향해 걷는데 길옆으로 제주도의 쓰레기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동복리 자원순환센터가 멀리서 나타났다.

예전에는 돌을 캤던 곳이다.

그렇게 흉물스러웠던 커다란 웅덩이가 지금은 대규모 매립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곧 19코스 중간스탬프가 있는 마을운동장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사람들의 출입은 많지 않은 듯 잔디 위로는 잡풀들이 이 넓은 운동장을 독차지한 듯 지평을 늘려 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이곳 팔각정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리고 바로 ’벌러진 동산‘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들길이 나왔다.

 

 

 

벌러진 동산

두 마을로 갈라지는 곳, 혹은 넓은 바위가 번개에 맞아 벌어진 곳이라고 하며 벌러진 동산이라 불린다. 나무가 우거져 있고,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넓은 공터가 있으며, 아름다운 옛길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라는 올레 안내판이 이곳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곳 벌러진 동산 지역은 거의 곶자왈 수준이었다.

거대한 나무들과 돌 위로 자라는 나무 등 이곳이 생태적으로 매우 특별한 곳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숲길을 걷다보니 참으로 호젓한 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올레길의 묘미를 더 했다.

 

 

 

그런데, 휙..휙.. 또는 쉭,,쉭 하며 무서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바로 눈 안으로 들어오더니 드디어 굉음 같은 듣기 싫은 바람개비 소리가 귓가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 바람개비 소리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무서운 굉음을 내며 바람개비가 돌아가는데 거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난전 선생은 “그 소리에 멀미가 날 정도”라며 “공항에서도 이 정도 소리는 나지 않는데 소음이 정말 심각하다”는 걱정을 전했다.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려면 생태계 파괴도 심각한데 더불어 이런 굉음까지 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풍력발전이 실제로 제주도에 도움이 되는 일인 지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난전선생은 “이게 다 대기업이 제주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며 혀를 찼다.

 

 

 

“제주도 전역에 만들어지고 있는 모든 풍력발전 시설에 대해 심사숙고 해야겠다”고 전한 난전 선생은 “앞으로 풍력발전 시설에 대한 반대운동이라도 해야겠다”며 풍력발전 시설이 주는 그 소음과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길을 걷는 내내 동복.북촌풍력단지는 거대한 바람개비 소리로 머리가 아플 지경까지 심각한 굉음과 소음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멀리서 보면 소리는 들리지 않겠지만, 가까이서 만난 이들 풍력발전기 소리는 우리의 삶을 어지럽히는 흉기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난전선생은 “이들 풍력발전기는 그 소리에 잠시 지나는 사람도 듣기에 멀미가 날 지경인데 주변 나무나 식물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 소음 스트레스로 아마 이 주변에서 제대로 자라고 있을 식물은 없을 듯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숲속에서는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 거대한 바람개비 소리는 결국 생명체가 죽어가는 소리와도 같았다.

이곳 한 지역에만 15개의 바람개비가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길을 걸어 다 나오자 이제 김녕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난다.

아름다운 밭담이 이어지는 들길로 이어지는 이 길에서 난전선생은 송악이라는 식물에 대해 얘기해 줬다.

올래꾼 고광언이 돌담에 붙은 송악을 보며 “이런 풀은 먹을 수도 없고 제주에는 참 많은 식물인데 보기가 싫다”고 말한 대목에서였다.

”송악은 제주도의 모든 돌담을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해 왔다“며 ”제주에서는 사실 가장 소중한 식물의 하나“라는 설명이었다.

”송악은 돌담을 따라 뿌리를 내리며 돌 하나하나를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송악이라는 식물은 돌담을 따라 돌 하나하나에 뿌리와 줄기를 붙여 돌담에 놓인 돌을 다 잡아주고 있었다.

 

 

 

더욱이 농사를 지어 파릇파릇한 들길을 따라 걷는 것은 이날 볼 것 별로 없었던 올레길을 더욱 빛냈다.

자연이 주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했기 때문이다.

김녕마을을 향해 걸으면서 만난 보리가 자라고 있는 밭은 더욱이 더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 하나 하나가 모두 다 그림처럼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밭 한 가운데 돌밭 위로 마늘이 자라고 있었다.

난전선생은 ”제주도의 밭자락을 보면 작은 공간 하나도 그냥 놓아두지 않았던 제주 사람들의 슬기로운 마음이 보인다“며 기어이 ”돌 위에 자라는 마늘을 사진으로 남겨놓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곧 나타난 그림 같았던 보리밭과 밭담의 조화..

보리가 익어가는 이 청록색 보리밭은 밭담과 함께 이날 우리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밭담을 가로질러 만들어진 이들 청보리밭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포인트 중 하나다.

물론 2월부터 5월까지 이런 청보리밭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여젼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청보리가 흐드러진 들길을 다 지나오자 곧 김녕마을 안길로 올레길은 이어진다.

평화로움과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곳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오래된 팽나무.

신성한 느낌을 주는 이 팽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돼 잘 관리되고 있었는데..

이 나무 앞 한 집 안쪽에는 갓 잡아 올려 말리고 있는 옥돔 몇 마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집 담벽에는 산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매화같이 보이지만 산당화“라는 것도 난전선생이 말해줘 알았다.

참 예쁘게 핀 ..

그 꽃 하나로 마음이 포근해지는..

이 골목길 끝에 지금은 사라진 명칭이기도 한 서김녕마을(예전에는 동김녕과 서김녕으로 마을이 나뉘어 있었지만 지금은 마을이 김녕리 하나로 통합됐다고 한다)에 도착했다.

이 길을 따라 해안으로 나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서김녕포구다.

‘바다와 바람이 만든 보물마을 김녕’이라는 마을지도가 우리를 반겼다.

 

 

 

김녕리

김녕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22km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로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그 연대가 확실하지 않으나 궤내기굴에서 선사유물들이 발굴되는 점 등으로 보아 그 연대가 약 2천년 전후로 추측된다.

김녕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에 김녕현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나타난다.

김녕리는 1914년 일제강점기 기간에 동쪽 부분을 동김녕리, 서쪽부분을 서김녕리로 분리하여 주민 간 갈등을 야기시켜 왔으나 마을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주민여론이 형성되어 1999년7월11일 주민투표로 마을을 합치기로 하고, 2000년 1월1일부터 동김녕리와 서김녕리를 통합하여 다시 ‘김녕리’로 바꾸었다.

 

올레걷기를 다 마치고 길을 오르는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공방이 있어 방문했으나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나무로 작품을 만드는 중이었는지 안에는 좁은 공간에 많은 나무로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어서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월 대보름날이기도 했던 이날 세찬 바닷바람을 앞에두고 올레 하프걷기를 마쳤다.

 

 

 

 

올레는 걷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그런 길이지만 여전히 걷는데 많은 불편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올레코스의 걷는 길이가 너무 길고,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코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편의시설이 부족하다거나 뭔가 먹을 곳도 부족하고 마을과 연계도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의 아쉬움을 지적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사실 올레를 걷다보면 웬만한 불편함 쯤은 그러려니 하게 된다.

무엇보다 제주도를 모두 다 돌아볼 수 있다는 장점과 제주도의 많은 마을을 안쪽까지 들어가 그 동네를 느끼고, 그 지역오름을 오르고, 마을과 가까운 제주해안을 바라볼 수 있는 올레길 만이 갖는 묘미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불편함을 딛고 올레길에 들어서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결코 걷는 이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늘 올레걷기에 나서보기를 권하는 중이다.

인생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 길이 눈앞에 펼쳐져 기다리고 있다면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인생을 걷듯 또 다른 인생길이 펼쳐질 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올레길에 나서면 올레는 올레꾼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난전 강법선 선생(왼쪽)과 올레꾼 고광언(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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