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물통에 물이 고여 펄(뻘)물..화순리 퍼물(용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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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물통에 물이 고여 펄(뻘)물..화순리 퍼물(용천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2.13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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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물논은 화순리 設村의 한 軸을 이루었고 富村의 원동력이었다

화순리 퍼물(용천수)
 

위치 ; 안덕면 화순리 464번지 '대필막4거리' 동쪽 150m 지점
유형 ; 수리시설
시대 ; 조선~(추정)

 

 

 

이 물은 수세가 매우 약하여 진흙을 몰아내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항상 물통에 '펄'(뻘)이 고여 있었다. 그래서 '펄물'인데 후에 오면서 발음이 변하여 '퍼물'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화순리에 거주하는 양씨의 선조인 양수담(梁遂淡)이 조선 숙종22년 丙子(1696)에 처가이던 감산리에서 현재의 퍼물 인근에 논을 개척하여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그가 살았던 터(482번지)를 '양가막터'라고 부르고 있다.

후에 종가인 양경호 댁을 일컬어 '퍼물집', 이 동네를 '퍼물동네'라고 부른다.


흔적만 남아 있던 것을 2009년 주변 정비를 하였다. 안내 표석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문이 새겨져 있다.


〈1696년 濟州梁氏 星主公系 24世孫 梁遂淡이 이 근처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바위 틈에서 흘러내리는 이 泉水를 생활용수로 이용하였으며, 특히 下流에는 거친 濕地로 형성되어 있어 이를 개간하여 논을 만들었으니 무려 일정보가 넘는 규모다.

이 논들을 일컬어 퍼물논이라 한다. 이는 화순리 設村의 한 軸을 이루었고 富村의 원동력이었으니 퍼물의 遺蹟으로서의 가치를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정비 보존하는 바이다. 서기 2009년 12월 서귀포시장〉
《작성 081022, 보완 1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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