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문촌이라는 자부심 ..납읍리 마을방어성담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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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문촌이라는 자부심 ..납읍리 마을방어성담①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2.21 0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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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리는 4·3 당시 400여 가호가 사는 큰 마을이었다

납읍리 마을방어성담①
 

위치 : 애월읍 납읍리 마을 동북쪽~북서쪽
시대 : 대한민국(1950년)
유형 : 방어유적

 

 


납읍리는 4·3 당시 400여 가호가 사는 큰 마을이었다. 1948년 4·3 사건이 발발하자 무장대들의 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주요 거리목하다 초소를 설치하고, 당번을 서는 등 경비를 담당하였다.

또한 문촌이라는 데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며 경찰관을 많이 배출한 마을이어서인지 주변의 다른 중산간마을과는 달리 1948년 11월에 소개되지 않고 12월 14일 소개되었다.

이 때에도 주민들만 소개시키고 집을 불태우지는 않고 지붕만 걷어내었다. 소개 후에는 무장대가 마을을 습격하여 학교, 향사, 포제청을 소각시켰다. 그 후에는 별 피해가 없어 옛집들이 원형대로 많이 남아 있었다.


납읍 주민들 중 90%는 애월리로 내려갔으며 소수가 곽지리로 갔다. 애월리로 소개한 사람들 중 일부는 1948년 12월 28일 토벌대에 의해 호명되어 자운당으로 끌려가 학살됐으며, 1949년 1월 16일에는 빌레못굴에 숨어 있다가 희생되기도 했다.


1950년 4월 29일 소개령이 해제되자 마을 주민들은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무장대가 집에 불을 지르지 못하도록 초가의 지붕을 모두 걷어내고 소개를 갔기 때문에 곧 바로 자기 집에 입주할 수가 없고, 더더욱 치안상태가 불안하여 부득이 마을 주민들은 1937년에 마을의 액운을 막기 위해 쌓았던 방사용 성담을 그대로 마을방어성담으로 이용하면서 사장터 1만여 평에 외곽성을 둘렀다.

그리고 나무를 베어다가 기둥을 세우고 축담을 쌓아 판자로 지붕을 덮은 후 가마니로 문을 만들어 지은 함바집에서 반별로 1개동씩 집단으로 주거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축성 책임으로는 동 고을은 유홍식, 서 고을은 강순중이 총책임자가 되어 4개월여에 걸쳐, 납읍 전체 둘레를 이중으로 높이 4m 내외의 성을 완성하고 25여 개의 초소를 설치, 사람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었다.

동 고을은 사장에서 시작하여 안가름, 묵은새빌레, 수대비거리, 댁거리뒤길, 계왓, 앞동산, 종남이, 고냉이동산, 누루기, 안선돌왓에서 금사까지, 서 고을은 금산에서 시작해서 소앳동산, 검은덕 루, 잿빌레, 문직이, 성질, 사장에 이르기까지 온마을을 원형으로 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축성을 하고 큰 가시나무 등을 베어다가 바리케이트를 치는 등 철통같은 경비를 했지만 소개 귀향 2년 후 11월에 처음으로 많은 무장대들이 동하동 수대비 거리로 습격하여 민가에 불을 지르고 곡식, 씨앗, 포목, 이불 등 침구며 옷가지 등은 물론 외양간에 메어둔 소, 말까지 약탈해 갔는데, 이때 문인흡, 문두전, 강기천의 집이 전소되는 등 동하동 주민들의 큰 피해를 보았다.


그 이듬해 겨울 11월에 제 2차 습격이 있어 많은 재산을 약탈해 갔다. 그 후 사태가 완전히 안정되고 10여년이 지난 후부터 밭에 축성했던 돌들을 치우고 감귤원 등을 조성하여 문직이(門直伊) 동네를 중심으로 최초로 축성한 성과 서하동 애월에서 오는 입구(양상진집터 뒤쪽)부터 곽지에서 오는 입구까지를 제외하고는 현재는 그 형태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납읍향토지 pp552~554.)

이 때 쌓은 성의 일부가 납읍리 2097번지 일대 속칭 '사장도'에 남아 있는데 이를 북문성(아래 사진)이라고 한다. 길이 300m, 높이 2~3m, 너비 0.5~1m 정도가 아스팔트 도로 양쪽에 남아 있으며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4·3 유적 701~703쪽)


곽지로 통하는 아스팔트길 옆에서 더 서쪽으로 성담을 따라가다 보면 성 안쪽에 높이 1m, 직경 3m 정도로 돌을 둥글게 쌓은 구조(위 사진)가 남아 있는데 이곳은 초소 터이다.

이 곳에서는 2사람이 밖을 경계하고 그 옆에 지은 움막에서는 2사람이 대기하도록 한다.(2008년 11월 9일 납읍리 거주 1929년생 진희익씨와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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