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살이 꿈속에서 서울을 보고, 놀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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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살이 꿈속에서 서울을 보고, 놀랐네.."
  • 고현준
  • 승인 2020.02.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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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20코스, 김녕-행원포구는 바람이 역사를 속삭이는 '마음의 길'

 

 

 

“월정해수욕장은 예전과 달리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그런 거지요..?”

“아니 그 전부터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여름이 되면 점차 좋아 지겠지요..”

그렇잖아도 경제가 어려운데 제주도의 주요 관광지 중에서도 이름 높은 월정리를 찾는 사람이 줄었다는 건 큰 걱정이었다.

올레를 다 걷고 행원에서 김녕까지 가는 동안 탔던 택시에서 이 지역 기사가 요즘 이 지역 분위기를 전하며 했던 이 말은 싸드와 코로나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제주도의 심각한 위기상황의 지표와 다름이 없다.

제주도는 요즘 신제주건, 구제주건 할 것 없이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지역을 다니는 택시기사가 손님이 눈에 띄게 많이 줄었다며 전한 이 걱정의 소리는 사실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언제든 찾아와도 좋았던 제주도가 이제 많이 변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제주도가 예전의 그 따뜻하기만 했던 제주도가 아닌 것이다.

 

 

 

아름다운 그 환경과 평화가 사라지고 슬슬 투쟁과 잘못된 관행만이 횡행하는 그런 아주 요상한 도시로 변하는 느낌이다.

어느 지역보다 더 환경도시를 지향해 가야 할 제주도가 방향을 잘못 잡고 개발 위주로 가는데 대한 반감이 사람들의 발길을 끊어지게 만드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제주도의 환경이 좋아 이를 보러 오는 것임에도 도지사를 비롯한 개발론자들은 그걸 전혀 모른다는 것이 사실 가장 큰 문제다.

그들의 환경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 제주도로 오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끊게 만들고, 제주도라는 세계적인 환경도시를 하나씩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도를 점점 쓰레기와 폐수가 넘쳐나는 죽음의 섬으로 몰고 가는 중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지난 15일은 제주올레 20코스인 하프구간인 서김녕에서 행원포구까지 걷는 날이었다.

오후에는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지만, 오전 날씨는 걷기에 딱 좋은 봄날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았고 기온도 따뜻했다.

 

이날 서김녕포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07분,

김녕리는 예전에 동김녕과 서김녕으로 마을이 나뉘어 있었으나 지금은 김녕으로 마을을 하나로 통합했다고 한다.

다만, 동네를 잘 표현하기 위해 서김녕으로 표기했을 뿐이다.

20코스 출발점인 서김녕 바닷가는 이날 물이 다 빠져 나가 전혀 새로운 바다를 보여주었다.

초록색 바다 이끼가 단연 압권이었다.

이곳 김녕바다는 바다를 바다답게 만들고, 거기에 검은색 용암이 바다로 흘러들게 만들어 몽환적인 자연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썰물이 아니면 만날 수 없었을 장관이었다.

이런 곳을 볼 때마다 제주도는 자연이 주는 모든 게 보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을길을 따라 나와 동쪽 해안길로 나오니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은 김녕 옛 등대가 예전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김녕 옛 등대

 

구좌읍 김녕리 성세기알 바닷가에 세워진 이 옛 등대는 속칭 도대불이라 한다.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 배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1925년 경에 세워졌었다.

그 후 허물어졌다가 1964년경 마을사람들의 요청에 의해서 다시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솔칵으로 나중에는 석유호롱불을 켜 불을 밝혔다 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제주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이 도대불은 각 마을이 포구마다 운영하던 작은 등대로 앙징맞은 그 모습이 정겹기만 했다.

그 작은 불빛에 의지하여 제주사람들은 밤마다 목숨을 걸고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갔던 것이리라.

이 길을 다 걸어 나오자 김녕 성세기해변 옆에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반짝반짝 빛나는 세기알해변이 나온다.

작지만 센 모래사장이다.

 

세기알 해변

 

빨간 등대와 풍력발전기, 그리고 파란 바닷물이 어울려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이곳은 세기알해변입니다.

썰물 때면 넓은 백사장이 펼쳐지는데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높지 않아 어린이들이 놀기에도 좋습니다.

김녕마을의 포구는 예로부터 유명했습니다. 지금 세기알 해변 옆에 있는 포구와 관련된 옛 지명은 ‘지픈개’, ‘세개’, ‘세기알’ 등입니다.

옛 문헌에는 ‘심포’라 표기됐던 곳입니다.

포장도로가 생기고 방파제가 축조되면서 옛 포구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명은 남아 오랜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곳에 서 있는 김녕, 월정지질트레일에 대해 성명하고 있는 안내판 내용이다.

사실 세기알 해변의 풍경은 주위 환경과 더불어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하얀 모래사장과 비취색 바다가 주는 색깔이 오묘한 분위기를 더한다.

이 세기알 해변을 지나면 곧 하얀 모래사장이 그림처럼 드리워진 김녕성세기 해변(김녕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성세기해변

 

성세기는 외세 침략을 막기 위한 작은 성(새끼성)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해변 입구 남서쪽 300미터 지점에 요왕황제국 말젯아들을 모시는 성세깃당이 있다 는 올레안내판이 이곳에 서있다.

 

해안가는 바람이 참 세다.

길가에는 바람에 날려 와 쌓인 모래가 가득이었다.

해변 안쪽으로는 많은 사람이 바다 가까이로 다가가 겨울바다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곳도 예전처럼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결코 예전 같지가 않은 모습이었다.

 

김녕성세기 해변

 

거대한 빌레 용암위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성세기해변은 ‘김녕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해변입니다. 유독 차갑고 투명한 바닷물 아래 조개류 껍데기로 이루어진 하얀 모래를 품고 있습니다.

성세기해변은 육상 쪽으로 들어간 만의 형태를 가졌습니다. 덕분에 파도가 강해도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적은 데다, 평균 수심이 1-2m여서 안전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해변으로 꼽힙니다.

최근에는 윈드서핑, 제트스키 등의 해양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피서객들도 즐겨 찾고 있습니다 라는 지질트레일 안내판이 이곳을 잘 설명하고 있었다.

 

 

김녕해수욕장을 지나 가는 20코스 올레길은 하얀 모래언덕을 지나는 환상의 길이다.

그곳에 펼쳐지는 제주의 모습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런 해변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야영객들이 있었다.

가족이 함께 즐기는 그 모습이 참 평화롭다.

그런데, 문제가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닷가 구석구석 바다쓰레기가 가득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반감시키는 이 해안쓰레기는 참 처리난이기도 하지만 그냥 내버려두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난이다.

누군가는 치워야 할 텐데도 아무도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히 켜켜이 가득 가득 쌓여가는 중이다.

성세기태역길이라는 특이한 올레길을 걷는 그 좋은 마음이 이곳에 널린 쓰레기들이 반감을 사게 만들어버렸다.

곳곳에 해안쓰레기가 산더미였다.

 

 

 

더욱이 올레꾼들이 직접 다니는 올레길에 쌓인 쓰레기는 정말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제주도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으려면 바다쓰레기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심한 제주도민들은 이 문제에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김녕해안가는 어디를 걸어도 지질트레일 구간이다.

형형색색의 용암이 튜뮬러스 형태로 스쳐가는 바다마다 가득하다.

이곳에는 또 바닷가 가까이에 만들어진 환해장성도 그림처럼 예쁘다.

왜적을 막기 위해 제주도 해안가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경이지만 바다를 끼고 만들어진 김녕 환해장성은 그 자체로 자기의 자리인 듯 만들어져 있다.

 

환해장성

 

환해장성은 말 그대로 해안을 둘러쌓은 성담입니다.

제주해안을 길게 둘러친 장성이라 해서 ‘제주의 만리장성’이라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그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270년 고려의 관군이 삼별초의 입도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제주로 들어와 고려 관군을 물리친 삼별포 역시 환해장성을 계속 쌓았습니다.

이때 환해장성의 용도는 고려군과 몽골군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조선시대 들어서서도 환해장성은 계속 보수되거나 신축되었습니다.

이때는 왜국 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배인 이양선의 출몰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환해장성은 조선시대때 쌓은 것입니다.

 

지질트레일 안내판이 환해장성에 대해 상세히 이를 설명하고 있다.

 

 

 

 

 

쓰레기가 널린 올레길을 따라 걷는데 바다와 달리 육지는 쓰레기가 넘쳐나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다는 아름답지만 육지는 더럽다는 것.

정말 쓰레기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이 쓰레기 올레길을 다 걸어나왔는데..

볼성 사나운 돌무더기가 또 흉측하게 줄지어 나타났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소속 직원이 만들어놓은 자연파괴 현장이다.

이곳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다 버려놓은 이곳은 몇 번이나 치우라고 요청했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이곳의 자연을 더럽히는 중이다.

길가만이 아닌, 지질트레일에서 중요하게 소개하고 있는 튜물러스 구간 위에도 돌을 쌓아 천연으로 된 지질문화제를 파괴하고 있다.

빨리 이 돌들은 치워져야 할 것이지만 담당부서인 읍 담당자에게 얘기해도, 에너지연구원에 처리를 요구해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해당 기관은 빨리 이곳을 자연 그대로 되돌려 놓기 바란다.

 

튜물러스(용암언덕)

 

이곳 해안과 같이 검고 평평한 용암대지를 제주도 말로 빌레라 부릅니다.

빌레는 토마토 쥬스처럼 잘 흘러가는 용암이 얇고 넓게 퍼져 흐르면서 만들어집니다.

이런 용암은 땅위를 흘러가다가 온도가 낮아져 앞부분이 먼저 굳어지면 뒤에서 계속 따라오던 용암이 앞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부풀러 올라 언덕처럼 솟아오른 지형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용암의 표면은 4각형에서 6각형으로 갈려져 있는데, 이것은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면서 생긴 구조입니다.

부풀어 오른 모양에 육각형으로 갈라진 모양이 마치 거북이의 등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지질학자들은 이런 지형을 거북등 절리라고 부릅니다.

 

특이한 형태의 이 소중한 튜물러스 용암언덕에는 자연을 거스른 인위적인 돌들을 올려놓아 자연은 물론 경관까지 파괴하고 아름다운 지형을 퇴색시키는 중이다.

바다는 아름답지만 이같은 자연에 사람의 손길을 가하면 그 가치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이제 길은 김녕리를 지나 월정리로 향하는 들길로 이어진다.

밭에는 흙이 아닌 모래로 채워진 땅.

척박한 제주시 동쪽 지역의 밭은 이렇게 흙보다는 모래가 많다.

그런 모래밭 같은 들길을 따라가니 드디어 월정리에 도달했다.

이날 우리가 월정리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올레꾼 고광언의 처갓집인 '월정 플레이스'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작은 민박집에서 차 한 잔을 마신 일이었다.

예전 오래된 집을 손봐서 소박한 민박집을 운영하는데 그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블로그에는 많은 후기가 달린다고 한다.

우리는 이 민박집 옥상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나올 때 고광언의 장모님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도 남겨 놓았다.

차를 한잔 하고 마을 안길을 따라 나와 월정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월정리는 그동안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땅값이 크게 오르고 인기가 치솟았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옛날의 그 명성 만큼은 못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찾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야 많겠지만 이날 택시기사는 그런 점을 부각시키며 걱정의 말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정리 해변은 늘 빛나는 하얀 모래밭이 사람을 그곳으로 이끈다.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푸른 바다와 함께 잠시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월정리는 해변이 너무 곱고 아름다운 곳이라 곧 옛날의 위상을 되찾아 가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월정리를 지나면 이날의 종착지인 행원으로 이어진다.

바람의 마을 행원리는 가장 먼저 스마트그리드가 생겼고 풍력발전도 가장 먼저 시작한 마을이다.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 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곧 광해군이 내렸다는 행원포구에 도착한다.

오늘의 종점 구간이다.

이날 행원 포구안에서는 해녀들이 잡아온 소라 등을 담은 태왁을 차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해녀들이 작업을 끝내고 들어온 순서대로 차례차례 기중기를 통해 태왁이 땅으로 올라왔다.

아마 그 안에는 전복이나 소라 미역 등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 태왁들을 차례대로 트럭에 옮기는 중이었다.

작업을 마친 해녀들이 차를 타고 가다 행원이 고향인 올레꾼 고광언을 보며 올레를 걷고 있느냐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행원포구에 도착해 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13시27분이었다.

행원포구에는 조그만 석비가 하나 놓여있다.

광해군이 유배 올 때 이 포구로 들어왔다는 안내판이었다.

 

 

 

그 뒤쪽에는 '제주 유배 때 광해군이 읊은 율시' 라는 제목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바람 불고 비 내려 성머리 스쳐가니,

장기는 음산하게 높은 다락 감싸 도네.

창해의 성난 파도 어스름에 들려오니,

벽산의 수심은 맑은 가을을 물들이네.

귀심은 왕손초를 볼 적마다 괴로울지니,

귀양살이 꿈속에서 서울을 보고, 놀랐네

고국의 존망 소식도 알 길이 없어,
연파의 강물 위 외로운 배에서 쉬어나 볼까.

 

광해가 썼다는 이 글을 읽으면 마치 광해를 만나는 것 같다.

임금이 제주에 유배를 왔고, 임금이 제주에서 처음으로 세상을 떴다는 사실은 역사다.

그가 이 포구에 도착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도 기록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역사 속에 함께 있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하건 그가 한 모든 일은 역사에 소리 없이 남는다.

우리는 그런 역사 속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를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래서 인생이 허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역사는 잘 써 나가야 한다.

제주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후손들을 위해 지금 우리가 잘 써 놓아야 한다.

올레길도 제주도도 우리가 자연 그대로 물려받았듯이 우리의 후손들 또한 예쁘게 물려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 20코스 올레길은 바람이 역사를 속삭이는 마음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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