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죽성마을 수호신..오등동 설새밋당(설새미당, 죽성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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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죽성마을 수호신..오등동 설새밋당(설새미당, 죽성본향)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3.04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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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이 세어 1702년 제주도의 신당을 모두 파괴했던 이형상 제주목사도 훼철하지 못하였다고..

오등동 설새밋당(설새미당, 죽성본향)
 

위치 ; 제주시 오등동 250번지. 죽성(가다시=加多時)마을 골프연습장 동쪽에서 남쪽으로 난 길 가다가 왼쪽 직선 진입로 끝에 있다.
시대 ; 미상(조선 추정)
유형 ; 민속신앙(본향당)

 

 



竹城本鄕(설새미당)은 죽성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神)을 모시는 성소(聖所)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죽성 본향에서는 서광배포 상시당또·산신·고씨할망·김씨하르방 등 4신위를 모신다.

주신은 '서광배포 상시당또'로서 '바람 차지 물 차지한 한집'이라고도 부른다. 즉 이 신은 산신이며 수신이고 풍신으로서 죽성마을의 생산, 물고, 호적을 관장하는 신이다.

죽성마을이 세워진 후 신당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오등동 죽성 본향은 신령이 세어 1702년 제주도의 신당을 모두 파괴했던 이형상 제주목사도 훼철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오등동의 한 마을인 죽성(竹城)은 대나무가 많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신당이 위치한 지역이 샘물이 나오는 곳 바로 위쪽인데 이 샘이 '설새미' 또는 '절새미'라 불리기 때문에 '설새밋당'이라고도 한다.


宋大珍씨에 증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神木을 자르려 했지만 신목에 매단 깃대가 저절로 흔들리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한다.(『4・3은 말한다④』338쪽) 그렇게 지켜졌던 신목이 외지에서 온 사람에 의해 베어졌다.

목장을 개간하려고 하는 객기 많은 젊은이 눈엔 그저 걸림돌이 되었을 터이다. 마을 주민들은 그 사람이 잘 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http://cafe.daum.net/aoraj/우리들학교 패랭이 글)


이 당은 산신당의 형태를 띤다. 설새미 지경에는 약 330㎡(제장 둘레 16.7m, 제장 약 33㎡)의 신당 부지가 있는데, 좌측에는 천막을 쳐 굿을 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중앙 위쪽에 시멘트로 담을 두른 제단이 있으며 제단 뒤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다.

제단은 시멘트블럭으로 간단히 구획이 나뉘어 있는데 넓은 오른쪽에 '설세미할머니'를 모시고 보다 좁은 왼쪽에는 산신(山神)을 모신다. 시멘트벽에 못으로 긁어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가 그렇게 되어 있다.


제일은 7일과 17일인데, 예전에는 정월 7일과 7월 7일에 많이 다녔다고 한다. 죽성마을 사람들은 제주 4·3사건 때에 소개(疏開)되어 도남동, 광양동, 오등동 등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월이 되면 생기 맞는 날을 택일하여 신당을 다녀간다.

출향민들이 다니는 신당이라는 점에서 본향당이 고향 마을에 대한 귀속감을 유지시켜 주는 하나의 계기가 됨을 알 수 있다.


신당에 갈 때는 2~4그릇의 메를 가져가는데, 메의 수가 다른 것은 신앙민에 따라 별도의 일월조상을 모시기 때문이며, 현재는 제일을 지키기보다는 신앙민의 필요에 따라서 택일하여 신당에 다닌다.


2014년 누군가에 의해 신목이 잘린 후로 신앙민이 다니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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