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고인돌 주장에 회의적..위미2리 고인돌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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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고인돌 주장에 회의적..위미2리 고인돌 의심
  • 고현준
  • 승인 2020.03.12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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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선사시대 유물 발견했다는 보고 없어

위미2리 고인돌 의심
 

위치 ; 남원읍 위미2리 산 143번지 자배봉(망오름) 북동쪽 정상
유형 ; 선사시대 무덤(추정)
시대 ; 탐라시대(기원후300년 추정)

 


위미2리 주민들이 오름에 산책로를 만들기 위하여 자배봉을 찾았다가 고인돌처럼 생긴 돌무더기를 발견하였다.

주민들의 의뢰를 받은 제주교육박물관과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관계자가 1999년 3월 20일 기초 조사를 벌인 결과 고인돌로 추정되는 돌은 4개인데 기원후 3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①뚜껑이 화산석으로 되어 있으며 최장 길이가 350cm 정도로 남북 방향으로 누워 있으며 자연석 2개가 받침돌로 사용되었다.


②,③앞의 돌에서 30m 남쪽에 위치한 2개의 돌무더기는 뚜껑이 현무암과 화산암이고 길이는 378cm, 355cm로 동서 방향으로 누워 있으며 역시 받침돌이 있다.


④위의 것과 2m 정도 서쪽 경사면에 위치한 돌은 뚜껑이 현무암이고 주변의 나무들로 인해 들려져 있는 상태이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주변 상태로 볼 때 고인돌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으며, 이들이 고인돌로 판명될 경우 오름 정상에 만들어졌다는 위치상의 특이성, 화산석을 이용했다는 재료상의 특이성 때문에 학술적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평가했다.(제민일보 1999년 3월 25일)


이 돌에 대해서는 김종철씨가 이미 1990년 7월 12일자 제민일보와 오름나그네 192쪽에서 '남봉의 제일 높은 곳에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조금 떨어진 숲 속에 평상 같은 너럭바위가 서너 군데 무성한 사스레피나무에 둘려 있다.

밑에 받쳐진 돌은 사람이 괴여 놓은 것 같이 보였다. 봉수대에 근무하는 봉군들이 전망대나 장기 두는 자리로 이용했었음직도 하다.'라고 기술한 것이 있다.


고인돌 주장에 대해서 필자는 회의적이다. 우선 탐라시대 사람들이 높고 경사도 급한 오름 위에까지 가서 무덤을 만들 만한 이유가 있었겠느냐 하는 물음에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둘째는 아래에 받쳐진 돌이 과연 사람이 인위적으로 받친 것이냐 하는 데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

화산 지대에서는 큰 돌 밑에 작은 돌들이 받쳐지는 경우가 많고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주변에서 선사시대 유물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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