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봉우리가 붓과 같이 생겨..곽지리 문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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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봉우리가 붓과 같이 생겨..곽지리 문필봉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3.25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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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들이 과거보러 갈 때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장소로도 이용됐다

곽지리 문필봉

 

(1) 위치 : 제주시에서 곽지리쪽으로 바로 들어서서 왼쪽 비치파크 민박 골목으로 200m
(2) 유형 : 마을 상징석(전설유적)
(3)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문필봉 봉우리는 모양이 꼭 붓과 같이 생겨 문필봉이라 부른다. 문필봉은 일명 외솥발이라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설문대 할망이 외솥발이와 구분 돌을 이용하여 큰 솥을 걸어 밥을 지어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문필봉은 구전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에 한 스님이 곽지 마을에 시주 받으러 왔는데 시주를 넉넉히 아니 주니 스님이 화가 나서 동네 사람들과 언쟁이 벌어졌다.

스님이 마음이 상하여 심술을 부려 곽지 마을이 자방에 있는 문필봉을 허물고 오방에 있는 답단을 허물어 못을 파면 곽지 마을이 앞으로 문인과 무인이 많이 배출된다고 말을 하고 스님이 사라졌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공론 끝에 자방 문필봉을 허물고 오방탑을 허물어 못을 파 만드니 이후부터 곽지 마을에는 문인과 무인이 배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은 전설 속의 이야기고 문필봉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예로부터 곽지리는 문인촌이라 일컬어 왔다.

문필봉은 전체가 바위로 형성되어 있어 오랜 기간 바람과 비로 인해 든든한 바위도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여 중간 일부와 봉우리가 떨어져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3년 6월 9일 마을임시총회에서 복원하기로 결의하여 6월 28일 기공하여 10월 10일 복원됐다.

문필봉은 지면 동서로 관통되어 있어 동서 양쪽에서 대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문필봉은 옛 선비들이 과거보러 갈 때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근년까지도 문필봉에서 수험생들이 합격을 염원했다.(2005. 1. 14. 제주투데이)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문필봉 앞에는 자연석으로 제단을 마련하였다.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려 다녀간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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