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일본이 자랑하는 전시국책사업장..옹포리 다께나까(竹中)통조림공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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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일본이 자랑하는 전시국책사업장..옹포리 다께나까(竹中)통조림공장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4.0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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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인들에게 부식을 제공했던 최고의 통조림공장이었다.

옹포리 다께나까(竹中)통조림공장터
 

위치 ; 한림읍 옹포리 265번지 일대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산업시설(통조림공장) 터

 

 

 

이곳은 일제강점기 다케나카(竹中)통조림 공장의 터전이다. 1931년 전쟁 당시의 절대적 수요에 맞추어 군수용 통조림 시설을 확장하였다.

이 공장을 창설한 사람은 다케나카신따로(竹中新太郞)인데 그는 1892년 일본 교토(京都)에서 태어나 1926년 제주로 들어왔다.

부친의 유업을 이어받아 대단위 목장과 우유 제품 연구로 대성하였다. 제주도에서의 제품은 쇠고기 통조림에 이어 청어(鯖魚) 통조림으로 호평을 받았다. 일본 군인들에게 부식을 제공했던 최고의 통조림공장이었던 것이다.


식민지 한반도에서 강력한 사업가로 알려져 역대 조선주둔군사령관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내방을 받을 정도였고 일본산업협회의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에는 일본군 1200명을 공장에 상주시켜 주야 교대로 계속 작업하게 하여 하루에 소 400마리를 도살하기도 한 일본이 자랑하는 전시국책사업장이었다. 공장 부지 4800여 평, 공장 건물 386평, 창고와 사택 512평이었다.(현장의 안내판)


공장의 굴뚝(약 27m 추정)과 판자를 덧대어 벽(빈지벽)을 만든 일본식 건물이 남아 있다. 지붕은 양철이고 지붕 마로 밑에 판자로 처마돌림을 했다. 단층이지만 상당히 높은 편이다. 주민의 말로는 이 건물의 남쪽에 금고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원자동차정비공장이 들어서 있는데 마당 바닥의 시멘트는 일제시대의 것이라고 하며 은행나무도 당시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굴뚝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築造 鐵鋼フソワリ-ト煙焚工業所 京都市左京區川妹御磁橋東入 電話上六九四三番'이라는 글씨를 철로 주조한 판이 붙어 있다. 아마 굴뚝 건설회사의 표식인 것 같다. 굴뚝의 북쪽에 연기 구멍이 나 있어 공장의 주요 건물이 북쪽으로 이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근 주민의 말을 들어보면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웠던 일제말기에는 인근 주민들이 이 공장에서 일을 해 준 댓가로 '고등어 대가리' 하나 얻어 들고(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그 일도 참여하지 못하여 애를 태웠다고 하니 당시의 식량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이 공장은 해방후에는 고종석씨가 불하받아 「대동식품공업사」가 되었으며 2연대와 모슬포 제1훈련소에 군수물자를 납품하기도 했다. 1949년 초에는 명월, 금악, 상명 등지에서 온 소개민들이 이곳에 대거 수용되어 몇 달 동안 힘든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당시 공장은 수천 평 규모로 판자 조각이나 가마니 등으로 칸을 막아 생활했다. 식량이 부족했고 위생 상태로 불량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추워서 유아들이 집단적으로 홍역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 공장 옆에 있던 「우에무라(植村)제약주식회사」에서는 감태를 원료로 옥도용액을 생산하여 군납했었는데 이 공장은 해방후에 「협신제약 한림공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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