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4년제 개량서당..조수1리 신성의숙기념비
상태바
[향토문화]4년제 개량서당..조수1리 신성의숙기념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4.10 0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33년 조수개량서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폐지되었다.

조수1리 신성의숙기념비

 

위치 ; 조수리 2684-1 옛조수국민학교 정문 옆 울타리 남쪽에서 7째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비석(기념비)
크기 ; 높이 75㎝, 너비 32㎝, 두께 14㎝
비문 ;〈전면〉新成義塾紀念碑 天下桃李 盡在公門 〈후면〉先生所依有餘斟 古酌今瞬息止間 四個里有志設塾發論 相互合意其奬義塾 非但一人之事有志勉力成焉(4개리 유지들은 의숙을 설치하여 마을간의 합의로 다시 없는 배움의 터를 성사하다. 북제주군 비석총람 906쪽) 着工西紀一九二五年十二月 竣工西紀一九二六年五月 塾長 金大亨 趙南浩 金應謙 評議員 金容三 金宗鉉 文成直 〈좌측면〉西紀一九七六年四月日 造水里民一同建立 〈우측면〉楮旨里金季乭 邊宗欽 梁元鉉 淸水里 李東喬 任國鉉 樂泉里 金宗鉉 文成直

 

 

조수리에서는 면장 허가에 의해 1924년 향사를 신축하고 곧 4월에는 향사에 4년제 개량서당을 개설하였다. 초대숙장 김대형(金大亨), 평의원 김용삼(金容三) 등이 헌신하였다.

이 사숙은 인근 산간마을인 저지리, 청수리, 낙천리, 조수리 4개 마을이 공동으로 운영하여 처음 저지리의 김수후(金秀厚=金季乭?)·변종흠(邊宗欽)·양원현(梁元鉉), 청수리의 이동교(李東喬)·임국현(任國鉉), 낙천리의 김종현(金宗鉉)·문성직(文聖直) 등이 의숙운영회 임원으로 크게 활동하였다.

교사로는 수동의 양문숙, 무릉의 부태환, 낙천의 박성수,, 조수의 김우경·강원호, 명월의 임상국, 고산의 강기숙 등이었다.

당시 학교의 위치는 조수리 중동이었고, 서쪽에는 숙직실, 북쪽은 대동(大洞)에 속하여 학교 전체는 중동네와 큰동네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다. 취학지구가 4개리여서 재학생수가 많아 도가(都家) 집 앞에 동향으로 3개 교실, 북쪽에는 직원실과 1개 교실이 있었다.

또 남쪽에 3개 교실을 증축하였다. 수업 방식은 1·2학년인 초급반과 3·4학년 고급반으로 나누어 복식수업으로 가르쳤다.

뒤에는 학생이 증가하자 학년별로 수업했다. '제주여성문화유적'에는 학생이 50명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교실을 계속하여 증축한 것으로 보아 훨씬 더 많아졌던 것으로 보인다. 1933년 조수개량서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폐지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