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얼레지는 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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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얼레지는 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립니다"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0.04.2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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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얼레지꽃 같은 정치인과 시민이 되었으면...

얼레지꽃 같은 정치인과 시민이 되었으면...

얼레지 (백합과) 학명 Erythronium japonicum

 

 

밝고 아름다운 삼사월이 어느덧 지나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지루하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을 보내야 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맞으리라 기대도 했었는데 전혀 뜻밖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미증유(未曾有)의 국면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아마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제까지 지내왔던 우리의 일상과 문화, 사회체계 등 다방면에 걸쳐 참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가 여러 분야에서 전개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동안 우리 주변에서도 많은 변화를 모두가 직접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전쟁 때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 격리는 이제까지의 일상과 문화에서의 의례적 행동과 양식, 당연함에 대한 제반(諸般) 사항을 다시금 성찰해보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오만했던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은, 하찮고 힘도 없는 바이러스에도 무력한 측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인류가 국가, 인종, 문화에 따라 각각이 아닌 생물계의 같은 한 종(種)일 뿐이라는 것도 일러 주었습니다.

구경꾼을 모으고자 추진했던 유채밭을 갈아엎고, 튤립밭의 꽃을 따서 폐기하고, 화려한 벚꽃 길에 금줄을 치면서 ‘손님이 왕’이라는 기존의 경제 상식이 맞지도, 틀리지도 않는다는 것도 배워야 했습니다.

비로소 인간의 삶과 자연이 모두가 함께 얽혀 세상천지가 이루어지고 이어간다는, 깨우침의 시간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서로 해(害)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때맞춰, 더불어 살고 존재하는 순리의 세계, 자연이 상도(上道)임을 비로소 알 듯합니다.

밝고 화사한 사월의 따스한 봄 햇살 아래 온갖 산들꽃은 자작자작 다투어 피어나는데 집안에 콕 박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어느 일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벌(罰)로만 여겨져 행장을 꾸려 산들꽃을 찾아 나섭니다.

봄꽃이 다양한 천마산에 닿으니 꽃만큼이나 밝고 활기찬 사람 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아는 사람을 만나도 눈인사에 그치고 멋진 꽃 한 포기에 우르르 몰려들지 않는 변화가 암묵 간에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꽃 산행 행태에도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많은 꽃이 아침 햇살 아래 해맑은 미소로 반겨줍니다. 졸지에 ‘꽃이 반긴다.’는 표현도 이제까지의 습성에 따른 사람 중심의 아전인수이지, 꽃은 사람을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듭니다.

이 또한 코로나19 때문에 다시 생각해 보는 결과인가 봅니다. 아무튼 꾸밈없이 소박한 산들꽃을 보니 탐탁하지 않은 위선 꾸러기 선거꾼들을 종일 보고 들어야 하는 집콕에 비교할 수 없는 감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마산으로 오르는 길은 산 입구부터 산들꽃이 만발했습니다. 다양한 제비꽃 종류, 알쏭달쏭한 현호색 종류, 나름 멋을 자랑하는 바람꽃 종류, 흰색, 분홍색, 청색으로 치장한 노루귀, 돌밭 사이에 무성하게 솟아나 자주색 꽃을 치렁치렁 매단 미치광이풀이 한창이었습니다.

기중(其中) 낫게 눈길을 끈 것은 밝은 분홍빛에 상큼하고 발랄한 얼레지꽃이었습니다. 흰색, 노란색이 대부분인 이른 봄 산기슭과 길섶에서 환하고 밝은 진달래 빛의 얼레지가 황량한 숲 바닥을 곱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상큼발랄한 진달래 빛의 얼레지꽃

 

 

얼레지는 가재무릇이라고도 합니다. 얼레지라는 꽃 이름이 외래어처럼 들리지만, 순수 우리말입니다. 이름의 유래에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잎에 있는 얼룩얼룩한 무늬에 연유한 것으로 보는 설이 통설로 보입니다.

얼레지는 높은 지대의 비옥한 땅, 산골짜기에서 자랍니다. 알뿌리인 비늘줄기는 땅속 깊이 박혀 있고 2개의 잎이 나와서 수평으로 퍼집니다. 잎은 긴 타원형으로 녹색 바탕에 얼룩얼룩한 자주색 무늬가 있습니다.

두 잎 사이에 한 개의 꽃줄기가 나와, 그 끝에 크고 화려한 분홍빛 꽃을 피웁니다. 오전에는 꽃이 밑을 향하여 수줍은 처녀처럼 다소곳이 고개 숙였다가 오후에는 꽃잎이 뒤로 발라당 젖혀져 화사하고 상큼발랄한 도시의 멋쟁이 아가씨로 돌변합니다. 이른 봄 황량한 계곡에서 봄바람에 살랑대는 얼레지꽃 무리의 화려한 군무(群舞)를 보면 가히 환상적입니다.

얼레지는 예외 없이 한 개의 구근에서 두 개의 잎이 나고 한 개의 꽃이 피는 1경 1화로서 원칙에 충실한 꽃입니다. 얼레지의 알뿌리는 땅속 20~30cm 정도로 깊이 박힙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땅에 떨어진 씨앗은 첫해에 떡잎 하나만 내밉니다.

해마다 조금 더 큰 잎을 내밀며 알뿌리는 더 깊이 들어가 4~5년이 되는 해에 비로소 두 개의 잎을 내밀고 다음 해가 되어서야 두 개의 잎 사이로 꽃줄기를 올려 오직 하나의 아름다운 분홍색 꽃을 피워내는, 인고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꽃입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얼레지는 5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립니다. 알뿌리를 깊이 다지고 균형 잡힌 두 잎을 내고 나서야 비로소 한 줄기에 하나의 꽃을 피우는 원칙을 실행합니다.

간혹 잎이 하나이면서 꽃이 달린 얼레지가 보이지만 이 개체는 산짐승이 잎을 뜯어 먹었거나 훼손된 것일 뿐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황량한 이른 봄 가벼운 미풍에도 일일이 대응하여 살랑대며 밝고 환한 웃음을 보냅니다. 겸손과 친절을 아는 꽃입니다. 익으면 씨앗에 개미가 좋아하는 먹이를 품고 있어 씨앗 이동의 대가를 개미에게 갚는,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꽃이기도 합니다.

지금 피어 있는 한 송이 얼레지꽃이 얼마나 대단한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참고 인내할 줄 알며 긴 세월에 걸쳐 알뿌리 다지고 두 잎 펴서 때가 될 때까지 나대지 않고 기다릴 줄 압니다.

있는 그대로 꾸밈없는, 위선과 거짓 없이 맑고 밝은 꽃을 피워내는 화사하고 친절, 겸손한 꽃입니다. 익으면 개미에게 먹이를 주고 심지어 흉년에는 인간에게 구황식물로 요긴하게 이용되었으며 구토와 설사를 치료하는 약재로도 사용되는 요긴한 식물입니다.

얼레지꽃을 생각하며 문뜩 우리의 현상을 떠올려 봅니다.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나라 일꾼이 뽑혔습니다. 그동안 거짓과 위선과 독단의 기준으로 사회를 편 가름하고 유체이탈의 언행에 수오지심도 없이 나댄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상대를 불구대천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한심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던 정치인들, 이들에게 부화뇌동하여 균형감 없고 줏대도 없는 도당(徒黨)이 인터넷 세상에서 암약하던 총선도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모두가 조용히 코로나19를 계기로 얼레지와 같은 자연의 뜻을 새길 줄 아는 정치인이 되고, 시민이 되어 언행에 책임질 줄을 아는 평온한 사회가 이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띄워봅니다.

(2020. 4월 얼레지꽃을 되새겨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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