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컨벤션센터가 훤히 보이는..대포동 설동산성(선돌동산성, 선질동산성) 마을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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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컨벤션센터가 훤히 보이는..대포동 설동산성(선돌동산성, 선질동산성) 마을성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5.04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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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성에 사용된 돌은 울담, 밭담, 산담 등 닥치는 대로 갖다 썼다.

대포동 설동산성(선돌동산성, 선질동산성) 마을성담

 

위치 ; 서귀포시 대포동 1727-1, 1730-2, 1783번지. 컨벤션센터 동쪽 200여m 지점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유적

 

 

서귀포시 대포동은 당시에는 중문면에 속했다. 대포 마을의 성담은 한두 달 사이에 완성되었다. 당시는 13개 반이었는데 반별로 구역을 할당하여 성을 쌓았다. 노인을 제외한 주민이 모두 동원되어 축성 작업을 했다.

축성에 사용된 돌은 울담, 밭담, 산담 등 닥치는 대로 갖다 썼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하여 할당량이 미달되었을 때는 순경이 매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담의 남쪽 줄기는 동쪽은 '기정목' 고신 집터에서부터 '앞동산' 김장근 집터, 대포동 1523번지 이창옥씨 집 올레에 남아 있는 방사 돌담과 연결하여 '동물개동산', '큰동산' 그리고 여기에서 '진동산'을 향하여 북쪽으로 이어졌다.

북쪽 830-1번지 '활쏜밭' 그리고 '큰솔동산' 앞 1536-6번지 김성식 집터를 지나 북서쪽 '돌막음', '너븐밭', '소르기동산', '선질동산' 지경으로 연결되었다.

여기에서 남쪽 '큰동산', '동물개동산'으로, 동남쪽 '진밭'에서 동쪽 '기정목'의 성담과 연결되었다. 이곳은 마을의 서쪽에 해당한다.


마을에서 만난 김봉찬(金鳳贊, 1928년생)씨는 대포동은 4·3사건 당시 무장대의 습격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을 둘러싼 성담은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튼튼하게 쌓았었다고 말한다.

이곳 설동산(선돌동산)은 원래 방사용으로 세운 길쭉한 돌이 있어서 '선돌동산'이라고 불렀다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마을(예래동)을 비추니 예래동에서 밤중에 돌을 눕혀 버리고 대포동에서는 다시 세우는 등 마을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2008년 8월 19일 면담)

현재 남아 있는 성담은 컨벤션센터가 훤히 바라다보이는 곳이다. 컨벤션센터의 동쪽 200여m 지점으로 마을의 서쪽 끝에 해당된다. 성은 남북 방향으로 거의 직선으로 200여m가 남아 있는데 축성 당시에는 높이가 약 5m 정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1727-1번지에 남아 있는 성담은 커다란 자연암반들을 성굽으로 이용하여 그 사이에 작은 돌로 이어서 성을 쌓았었는데 일부가 무너졌으며, 1730-2번지에도 크기 1m가 넘는 커다란 암석들 여러 개가 성굽으로 이용되었다.


《작성 090217, 보완 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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