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의 아름다움을 가져 가버리는 못된 손들..'나도옥잠화'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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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아름다움을 가져 가버리는 못된 손들..'나도옥잠화' 사라져
  • 김평일 명예기자
  • 승인 2020.05.06 0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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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1)구상나무 밑 이곳저곳에서 자라던 나도옥잠화, 하나 둘 사라져 이젠 거의 볼 수 없을 정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이해인님의 시 “풀꽃의 노래” 옮기다.)

 

 

“이해인님의 시” 작아도 너무 작은 들꽃들을 만나 고운 이름을 불러 주려고 오늘도 산과 들, 오름, 골짜기, 바닷가, 밭고랑 등을 누빈다.

이러는 나에게 들꽃들은 나지막한 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내 이름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많지만 서운하지 않다고.

그리고 나는 너무 작아서 어디에 있는지 존재자체를 사람들이 몰라줘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들꽃들이 나지막한 소리로 이해인님의 시를 내게 들려주는 것 같다.

 

들꽃들이 사는 처지가 사람들이 사는 처지랑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들꽃들은 호화로운 분(盆)에 담겨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자란다.

어떤 들꽃들은 쓰레기더미에서 자라기도 하고 돌무더기가 쌓인 척박한 곳에서 자라기도 한다.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호의호식(好衣好食)을 하며 살지만 어떤 사람들은 당장 먹을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의호색(好衣好食)을 하는 사람이나 당장 끼니 걱정을 하는 사람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근심과 걱정이 있다고 한다.

 

들꽃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멋진 분(盆)에 심겨져서 극진히 보살핌을 받는 들꽃들이라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는 달리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보이는 들꽃들이 새장 안에 가두어둔 아름다운 새처럼 눈요기 거리가 되는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들꽃들은 그들이 태어난 곳에서 자랄 때 제대로 된 보금자리에서 자라는 것일 것이다.

 

수많은 들꽃들이 그들이 자라던 곳을 떠나서 살고 있는 모습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오름과 곶자왈, 들판, 바닷가에서 자라던 들꽃들이 고향을 떠나서 예쁘게 치장하여 분(盆)에 담겨있는 모습을 볼 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진다.

왜 저 들꽃들이 분(盆)에 담겨 있을까.

들꽃들이 자기가 자라던 땅을 떠나서 왜 낫선 곳에서 지낼까.

상념(想念)에 젖어본다.

 

한라산 고산지역에는 들판이나 해안가에 비해서 꽃이 피고 지는 기간이 짧다.

대부분 한라산의 들꽃들은 5월 하순에서 9월 초순 사이에 꽃이 피고 진다.

해안가에서는 연중 들꽃들이 꽃이 피고 지는데......

한라산에 들꽃들이 피는 시기가 되면 자주 한라산을 오른다.

한라산을 올라 들꽃들을 눈여겨보면서 그동안 잘 있었는지 눈으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한다.

안 보던 시간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본다.

한라산의 들꽃들 중에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무성하게 자라서 예쁜 꽃을 피우던 들꽃들이 사라진 자리도 눈에 들어 올 때가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는 서운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위 때문에 죽어 버렸는지 아니면 혹시 사람들에 의해서 옮겨져서 사라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서운한 마음은 금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4천여 종(귀화식물이나 원예종은 제외)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사람마다 이름이 있는 것처럼 천여 종의 식물들도 이름이 있는데 식물의 이름은 식물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게 하고 식물들이 이름이 있으므로 사람과 식물과의 의사소통을 가능케도 한다.

식물의 이름에는 식물의 형태, 서식환경, 생태, 생리적 특성들이 나타나 있어서 이름을 알면 처음 본 식물이지만 그 식물의 특성을 대충 짐작할 수가 있다.

아는 만큼 잘 보인다고 한다,

들꽃의 이름을 알고 접한다는 것은 그만큼 들꽃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접근할 수가 있다.

들꽃의 이름에 접두어인 “나도 나 너도” 등을 붙이는 이유는 그 들꽃과 비슷한 또 다른 들꽃들이 있어서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한라산에서 자라는 들꽃 중에 ‘나도옥잠화’라는 들꽃이 있다.

나도옥잠화는 옥잠화를 닮은 들꽃이다.

나도옥잠화는 백합과 나도옥잠화속의 여러해살이풀로 두메옥잔화, 당나귀나물, 제비옥잠화라고 부르는 들꽃으로 높은 산 나무그늘 아래에서 자라는 들꽃이다.

한라산 1,600m이상 구상나무 아래에서 수줍은 모습을 하고 등산객을 맞이하는 들꽃이다.

잎은 길쭉한 타원 모양으로 뿌리줄기에서 나오는데 잎이 두텁고 반질반질하며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줄기는 잎 사이에서 나오는데 20cm정도 곧게 자라고 꽃줄기 끝에 흰색의 작은 꽃들이 5개 정도 핀다.

국립수목원에서는 희귀식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들꽃이다.

한라산을 올라 구상나무 숲에 도달하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들꽃이 나도옥잠화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하얀색 꽃을 피워 등산객들을 맞아 주는 들꽃이다.

10여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봐 왔기 때문에 매년 보이겠지 했는데 나도옥잠화가 자라던 자리가 비어 있다.

나도옥잠화가 자라던 곳이 움푹 패어 있다.

누가 강제로 나도옥잠화를 이사 시킨 모양이다.

 

매해 튼실하게 자라서 꽃을 피우던 나도옥잠화가 병들어 죽은 것은 아닌 것 같고 못된 손이 보쌈해 간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 후로도 구상나무 밑 이곳저곳에서 자라던 나도옥잠화가 하나 둘 사라지더니 이젠 거의 볼 수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한라산 보호구역 안에 있는 나도옥잠화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으므로 잘 있겠지만 검은 손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면서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라산의 아름다움은 자연만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보금자리를 튼 동식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어서 더 아름다운 것이다.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가져 가버리는 못된 손이 사라질 때 한라산은 한층 더 아름답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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