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2002년 아름다운 마을숲(우수상)..서홍동(동홍동) 흙담소나무(土墻松)(방사림防邪林)
상태바
[향토문화]2002년 아름다운 마을숲(우수상)..서홍동(동홍동) 흙담소나무(土墻松)(방사림防邪林)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5.10 0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 화로와 같은 모습을 지녔다 해서 이 고장 선인들은 홍로(烘爐)라 불렀다

서홍동(동홍동) 흙담소나무(土墻松)(방사림防邪林)
 

위치 : 서홍동 308-1번지 서귀북초등학교 앞 토담
유형 ; 나무(방사용 송림)
시대 ; 조선

문화재 지정 사항 ; 서귀포시 보호수(고유번호 2-90-124-1~66. 1990년 12월 17일 지정)

 

 


흙담은 마을 앞 서귀북초등학교 뒤의 큰 소나무가 동서 직선으로 심어져 있는데 그곳에 흙으로 쌓은 담을 말한다.

지난날에는 '한질'을 중심으로 '흙담'이 있었으나 지금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서홍동과 동홍동을 구분하는 16번 도로를 가로질러 서홍동에 66그루, 동홍동에 22그루 등 키 15m, 둘레 1.5~3m 정도 된 90년생 전후의 해송(海松)이 어른 무릎 높이의 흙담 위에 길게 심어져 있다.


이 마을은 고려 초에 세워진 유서 깊은 곳으로, 서기 1300년경 홍로현청이 설치될 정도로 문물의 중심지였다.

마을 주변이 산으로 둘러있어 화로와 같은 모습을 지녔다 해서 이 고장 선인들은 홍로(烘爐)라 불렀으며, 지금의 서귀포시 방향인 남쪽으로 기운이 허(虛)해 재앙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금과 같은 숲을 조성하게 됐다.


풍수지리설의 비보(裨補) 개념에 따라 남쪽의 허한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평지 위에 일부러 흙담을 쌓고 그 위에 해송을 심었다.

흙담소나무의 조성을 보여주는 당시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봄에 당시 구장이던 고진사가 주민을 동원하여 예전의 흙담을 수축하고 주위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동흥동의 현만옥(85) 할머니는 당시 청년들 한 사람이 한 그루씩 소나무를 심었다는 말을 어른께 들었다고 하니, 그 당시 청년들의 수고로움이 지금의 훌륭한 마을숲을 형성한 원인이 된 것이다. 남쪽의 허한 기운을 북돋기 위해 흙담을 쌓고 그 위에 해송을 심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굵은 밑둥을 자랑하는 소나무들은 기개가 넘치는 선비의 기풍을 지니고 있다.


도로가 좁아 인도도 없고 차량소통도 원활하지 못해 이 지역을 지나는 차량 운전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지만 그래도 흙담소나무숲을 없애자고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마을이 커지고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더 넓은 길이 필요하게 되면서 숲의 운명도 위협받게 됐다. 서홍동 흙담소나무는 바로 옆에 들어앉은 아파트와 학교로 인해 답답한 느낌을 준다. 반대편 동홍동 흙담소나무는 아파트와 같은 인위적인 위협은 없지만 최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자람이 부실해 보였다.


그나마 지금과 같이 흙담소나무가 보호된 것은 1990년 서흥동 청년들이 80여년 전 선조들이 좁은 길을 감수하면서 그 소나무 숲을 지켜낸 조상들의 정성이 그랬던 것처럼 훼손되는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생육 상태가 좋은 소나무를 보호책(356m)으로 막고 관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서홍동ㆍ동홍동의 흙담소나무 마을숲은 2002년 아름다운 마을숲(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소나무들을 담장으로 삼고 있는 초등학교의 표상으로 써 놓은 문구에도 '푸른 솔 푸른 꿈 밝고 맑고 새로움이 자라는 학교'라고 되어 있어 소나무가 마을의 상징이며 아끼는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숲길에는 흙을 쌓았던 흔적은 거의 없어졌고 키 큰 소나무들과 우뚝 선 건물들이 줄지어 키재기하는 것만 같다. 소나무의 대부분에는 긴 세월을 나타내듯 고사리류의 식물들이 소나무 등걸을 감싸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