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2층 구조 목조 기와집..한림리 옛한림여관(윤씨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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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2층 구조 목조 기와집..한림리 옛한림여관(윤씨주택)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5.24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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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리 내 유일한 2층집..광복 후 1960년대까지 '한림여관'을 운영

한림리 옛한림여관(윤씨주택)
 

위치 ; 한림읍 한림리 1372-9. 일주도로변 음식점 '滿江鴻' 길 건너 무료주차장 서쪽 붙은 집
시대 ; 일제강점기
양식 ; 2층 목조 기와집
소유자 ; 윤행정
문화재 지정번호 ; 비지정

 


한림리 윤씨 주택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2층 구조의 목조 기와집으로, 한림리 내 유일한 2층집이었다.

한림리 윤씨 주택은 목조로 2층 구조이며 기와를 씌운 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인 주택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기와를 벗겨내고 함석으로 된 스페니쉬 기와를 씌워놓았다.

건물 벽은 모두 판자를 횡으로 덧대어 올리는 빈지벽 방식으로 지어졌고, 내부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다다미방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광복 후 1960년대까지 '한림여관'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목조 건물은 많이 퇴색하여 유리창틀은 알미늄 샤시로 바뀌었고 창틀 주변에는 함석을 덧대었으며, 처마 아래에 설치한 물받이도 교체되었고, 지붕도 갈아 덮었으며, 서쪽 벽에서 울타리까지 스레트를 이어덮어 공간을 확장했으나 옛 모습을 대부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주택 중에서 2층의 가옥 구조를 온전히 살펴볼 수 있는 곳은 현재까지 이곳이 유일하다.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고 판단된다.

1930년대 중반 지어질 때부터 1970년대까지 한림여관으로 운영했었다. 그 후 학원 등으로 운영되기도 하였다. 현관이 밖으로 돌출되고 외벽 전체가 널판으로 덧붙여 있는 전형적인 왜식가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4․3사건이 일어나던 새벽 그 시간에 김익렬 제9연대장이 이 여관에 부대원 등 몇 사람과 함께 투숙해 있었으며 무장대는 이 여관에도 폭탄을 투척하였다. 김익렬의 유고를 인용한다.


〈前略 … 그 때 나의 승용차는 1과1/2 트럭이었다. 동승자는 연대 부관 심흥선(沈興善‧훗날 대장으로 예편) 대위, 연대 군수참모를 하고 있는 유근창(柳根昌‧중장으로 예편) 대위를 면회오는 그의 형님, 모슬포중학교 교장, 운전병을 합하여 병사 5명 등 모두 9명이었고 군 보급품을 일부 싣고 있었다.

부대를 향하는 길에 우리는 도로주변 돌담 위에 앉아있는 꿩을 사냥하기도 했다. 99식 소총으로 꿩을 쏘는 것이었다.

탄환은 구 일본군이 바닷속에 버리고 간 탄환을 해녀를 시켜서 건져낸 것이었으나 사용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밭돌담 위에 앉은 꿩을 발견하면 심대위와 나는 총 1정을 가지고 번갈아 가며 내기를 하면서 쏘았다. … 中略 … 피크닉하는 기분으로 4월 2일의 오후를 사냥에 열중하다 보니까 날이 어두워져서 도착한 곳이 겨우 한림(翰林)이었다. 당시 한림 거리는 여관과 요리점도 있는 제법 큰 가로(街路)였다.


날이 어두워졌는데 난처한 문제가 생겼다. 차 조명등이 고장이 난 것이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한림에서 머무르기로 하고 한림여관에 연대장 일행이 유숙한다는 것을 부대에 연락했다. 다행히 한림여관은 운전병의 친가여서 우리 일행을 가족처럼 맞았다.

사냥하여온 꿩을 요리하여 배불리 먹고 나니 주간의 피로가 일시에 닥쳐왔다. 일행은 한방에서 일찍 잠에 들었다. 여관의 1층은 우리 일행이 쓰고 2층은 경찰관을 순회위문하러 서울에서 내려온 총경이 인솔하는 약 20명의 위문단이 유숙하고 있었다.


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벽 3시 전후해서였을 것이다. 고막을 찢을 듯한 다이너마이트의 폭음소리에 나는 잠을 깨고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을 깨고 보니 여기저기서 총성이 콩볶듯이 나고 유탄이 난무했다. 마치 전쟁터처럼 함성이 나고 총성이 교환되고 그 때마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격전지에서와 같은 돌격소리도 들렸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실이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난 심대위가 내 귀에 입을 대고, 조용히 하라는 것과 창밖에 적이 있는 듯하며, 우리 일행을 보고 던진 폭발물이 창문에 맞고 창밖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우리는 구사일생했다는 것 등을 일러주었다. … 後略〉
《작성 090524, 보완 1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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