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한림읍은 읍 전체를 쌓아..금능리 마을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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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한림읍은 읍 전체를 쌓아..금능리 마을성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5.28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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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과 1949년 1,2월은 잔인한 토벌..제주도를 죽음의 섬으로 몰아넣었다.

금능리 마을성담
 

위치 ; 한림읍 금릉리 1613번지 일대. 마을 서쪽 능향원 북쪽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유적(성)

 


1948년 10월 11일 이승만 정부는 4·3 토벌의 중심부대로 제주도경비사령부(사령관 송요찬중령)을 새로 설치하여 강력한 토벌정책을 실시하였다.

송요찬 연대장은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이것이 소개령(疏開令)이다.

11월 17일에는 대통령령 제31호로 제주도에 한정된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이후 군정의 토벌은 점점 무차별 학살로 변해갔다.

특히 국군 9연대와 2연대의 교체시기였던 1948년 12월과 1949년 1,2월은 잔인한 토벌에 따른 도민들의 희생은 엄청났고 제주도를 죽음의 섬으로 몰아넣었다.

1949년 봄으로 접어들면서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 대령)가 설치되어 무장대와 주민을 분리시킨 후 토벌한다는 작전개념에 의거하여 모든 마을에 축성을 강화하고 전략촌을 구상하게 된다.

특히 중산간 마을에는 마을별로 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이어 해안마을까지도 석성을 구축하였고 성의 중간 중간에 보초막을 세워 순번을 정하여 순찰을 하고 경비를 섰다.


한림읍은 다른 지역과 달리 마을별로 성을 두른 것이 아니고 읍 전체를 쌓았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귀덕4리(현 신흥동)에서 시작하여 상대 명월, 월림, 월령리까지 거의 10km에 이르는 석성을 쌓았다.

한림면 전략촌 성은 폭 3m, 높이 5m로 가장 견고하고 거대하게 축성되었다. 성을 지키는 역할은 특공대대와 일반 민보단으로 나눠서 했는데, 특공대는 순찰을 돌고 민보단은 연락을 담당했다.


금능리 마을방어성은 배령연대 남쪽에 약 100m 정도 남아 있지만 밭 경계로 많이 훼손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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