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이 담수로 목욕하면 만병이 통치..협재리 재암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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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이 담수로 목욕하면 만병이 통치..협재리 재암천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6.02 0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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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암은 천연적 석실이고 전국적인 명승 고적이라..가히 약물이라 할 만하다

협재리 재암천비
 

위치 ; 한림읍 협재리 2514-15번지. 한림공원 입구 동쪽 60여m 지점
유형 ; 기념비
시대 ; 일본강점기

 

 


한림읍 협재리 천연기념물 제236호인 협재굴 그리고 재암천굴(2000년 7월에 개정된 문화재법에 따라 천연기념물 지정에 관계없이 매장문화재로 인정되어 보호를 받는다), 쌍용굴, 황금굴, 초깃굴, 소천굴 등은 신생대 제3기말에서 제4기에 걸친 한라산지역의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산지사면을 흘러내려 형성된 동굴지대로서 하나의 화산 동굴계임이 학술적으로 밝혀졌으며 총길이 17,175m로 세계 제일의 화산동굴계이다.(http://jeju.daum.net/place/)

상명리 망오름 북쪽과 남쪽에 두 개의 용암동굴이 있는데 이곳을 속칭‘괴두둑캐’라고 부른다. 북쪽 동굴은 협재리 재암천과 연결되었다고 하여 옛날 동굴탐사반들이 고양이를 窟內에 넣어 불을 지폈던 바 고양이와 연기가 3㎞ 북쪽에 위차한 재안천으로 나왔다고 전하며 동굴탐사반원들이 횃불을 들고 재암천까지 통과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고증된 것은 아니다.(1999, 한림읍지 1201쪽)


재암천굴은 측량 확인된 길이가 약 114m로 비교적 소규모 동굴이지만 내부의 생성물과 주변환경 등을 감안하면 보전할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2008. 12. 23. 제주환경운동연합 성명서)

동굴 안 밑바닥에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그 위에는 탁자와 평상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비닐 등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어 보기에 좋지 않다.

동굴의 일부 천정과 벽면에 소형 분기공, 용담 종유와 동굴 산화가 관찰되고 있어 출입을 금하고 있다.(http://www.jjinews.com/ 제주인터넷뉴스 장영주 칼럼)


재암천은 용천수이면서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커먼 동굴 안에 있다. 한림읍 협재리 협재해수욕장과 한림공원 사이에 위치한 재암천은 길이 1백여m, 넓이 6m, 높이 4m의 조그만 동굴 안에서 물줄기를 솟아내고 있다.

들어가는 통로는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가기에 족할 정도이며 내부도 넓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동굴 안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보다는 마치 안방처럼 아늑하고 편안하다. 동굴바닥을 뚫고 솟아오른 샘물은 바닥이 3평 크기 정도의 굴속 왼쪽에 있는 샘물통에 모인다.

샘 주변에는 다른 샘에 있는 그 흔한 이끼조차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바닥에는 맑고 깨끗한 모래만이 엷게 널려 있다. 그래서 모래 바닥 위에 있는 재암천에는 생기가 돈다.


재암천을 둘러싼 굴 내부는 갖가지 모습의 기암으로 형성돼 겨울에는 온돌방처럼 온기가 있고 여름에는 냉장고와 다름없이 냉기가 가득하다. 이 같은 굴 내부에 샘물이 사시사철 분출되고 있으니 한 여름철 피서객에게는 더없이 좋은 피서처가 된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굴 내부에는 한여름에 모기조차 얼씬거리지 않는다.(제주일보 1996년 9월 26일) 겨울철에는 온돌방과 같이 온기가 있고 여름철에는 냉장고와 다름없는 차가운 기운이 나오는 굴이다.

청량한 맑은 물이 샘솟아 일명 세심천이라고도 하며 이 담수로 목욕하면 만병이 통치된다는 전설을 믿어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는 사람들이 이 물을 맞으려고 몰려들었다고 한다. 요즘도 해수욕을 한 사람들이 몸을 헹구러 들어가기도 한다.


재암천은 길이 100m, 너비 6m, 높이 4m의 용암동굴 안에 있다. 이 굴은 소가 물을 먹고 나오는 것을 보고 발견했다 해서 '쇠굴'이라고도 부른다. 또 이 부근은 협재해수욕장과 연결된 모래밭이었는데 큰 홍수 때 모래가 떠내려가면서 굴이 드러났다는 전설도 있다.

재암천에서 목욕을 하면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특히 물에 소금기가 포함되는 밀물일 때는 신경통·허리병·냉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며 이런 연유에서 '세심천(洗心泉)'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제주신문 15643호)


재암천 앞에는 1933년 5월 당시 협재리 리장이며 영주음사(瀛州吟社) 회원이었던 김홍종(1879~1944)씨가 세운 돌비석이 지금도 남아있다.

모나지 않은 삼각기둥 모양으로 된 자연석을 다듬어 한 면에는 크게 〔財巖泉〕, 다른 면에는 중간 크기의 글씨로 〔挾才里 □□(昭和)八年五月 日〕, 또 다른 면에는 〔財岩天然的石室全鮮名勝古蹟所載也其中寬廣八十步許産石鍾乳有寒泉水盛夏苦執就浴知市病多有效相傳相 可謂藥泉而此岩之名亦不虛傳云  春坡 金洪鍾 書〕라고 새겨져 있다.

"재암은 천연적 석실이고 전국적인 명승 고적이라. 그 중에 넓이는 80보이며 석종유가 있고 차가운 샘물이 있어 더운 여름에 병든 몸 목욕하면 매우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 가히 약물이라고 할 만하다. 이 바위의 이름이 역시 거짓이 아님이 전해지고 있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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