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엔 바람소리, 물소리가 가득하다. 소리를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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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엔 바람소리, 물소리가 가득하다. 소리를 그린 그림이다.."
  • 고현준
  • 승인 2020.06.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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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포커스)강요배 개인전 '금강산과 DMZ' 전시장 미리 가보니..'금강산은 선의 길의 도량'..
구룡폭(100호)

 

 

“하얀 계곡, 창공의 밝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골짜기가 있었다. 녹옥빛 물살은 고여서 찰랑대고, 물구슬이 되어 흘러내리고, 하얗게 부서졌다. 정갈한 돌과 물이 어우러 빚어낸 투명한 빛의 세계, 그 순수의 공간은 저 깊고 깊은 산의 가장 안쪽에 조용히 마련되어 숨 쉬고 있었다”

제주4,3을 동백꽃 하나로 상징화 하는데 한 획을 그은 제주동백의 작가 강요배 화백..

그가 20여년전 남북교류 이전에 북한 금강산 스케치여행을 다녀왔다.

강요배의 첫 금강산 기행은 그와 무명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온 학고재 우찬규 사장의 기획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강요배 화백

 

그래서 이번 제주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의 제목은 ‘금강산과 DNZ’다.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이 귀한 전시회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일반인들에게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12일 강요배 화백이 우찬규 학고재 대표를 비롯한 일행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전시장으로 달려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금강산 뱃길이 열리기 전 남북의 승인을 받아 ‘금강산 미술기행’을 다녀 온 그는 “옛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탐승도 하고 스케치를 해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작품화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들어가 그가 그린 ‘구룡폭’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100호 크기로 그려져 제주국제평화센터 전시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중향성’이란 제목의 그림은 200호 크기의 대작으로 벽면 한쪽을 다 차지하고 있다.

 

중향성(200호)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어땠을까.

“산은 멀고 그에 이르는 길은 첩첩하였다. 소라고동 속으로 난 길처럼 세 개의 도시를 돌고서야 겨우 산의 바깥 자락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 산의 속마음을 조금 열어 보여준 것은 거기에서 다시 더 돌아 들어간 산의 안쪽 깊고 깊은 내금강 골짜기였다. 거기에 그 눈부신 하얀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금강산에 대한 그의 감상이 참 정겹다.

“마음의 길이란 또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풀 수 있을 지도 모를, 보다 소박하고 시원적인 마음을 찾아 떠나는 고대로 향한 시간의 여행일 수도 있었다. 유교와 불교 이전 먼 옛날 고대인들은 인간의 갈등을 초월코자 자연의 품안에서, 산악과 더불어, 천지가 연결된 공간에서 그들의 소박한 꿈과 삶의 이상향을 찾지 않았을까?”

 

 

 

“금강산은 이러한 선의 길의 도량이었을 것이다. 먼저 외금강 골짜기를 찾았다. 옥류동 가득 싱그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 줄기 구룡폭은 운무 넘실대는 하늘로부터 비단폭을 걸친 듯 하얗게 흘러 내렸다. 천지를 잇는 길이라 상상할 만 했다. 이 길을 타고 올라 저 구름속에 이르면 비호봉 곁에 옥녀봉이 있었다. 옥녀, 옥녀는 고대선녀의 이름이었다”

“금강대 앞 너럭바위에 앉으니 저 유명한 겸재의 만폭동도가 떠올랐다. 그림 속엔 바람소리, 물소리가 가득하다. 소리를 그린 그림이다. 250여년전 어느 늦가을 소소한 바람속에 흰 돌의 뼈와 상록의 솔과 잣나무들을 소재로 붙잡아 그렸으리라.

그러나 그날의 만폭동은 조용하고 넉넉했다. 아직 아침녁 그늘을 머금은 골짜기는 짙은 젖빛을 띠고 어머니의 품처럼 안온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목탄으로 그 너르고 담백한 풍경을 주저없이 스케치했다”

 

 

 

이날 서울에서 내려온 우찬규 대표의 일행들과 강 화백의 지인들은 함께 전시장을 돌며 그의 개인전을 축하했다.

강요배 개인전은 오는 8월31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 좋은 전시회가 일반인들에게도 빨리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스케치해 보도한다.

 

이날 안내를 맡은 김선현 센터장과 함께..

 

 

강요배 화백과 기자와의 인연

 

기자가 그를 처음 만났던 때는 1967년 아마 3월 쯤이었을 것이다.

그는 중3, 나는 중1때..우리는 같은 미술부에 있었다.

53년이 지나서, 지난 12일 제주평화센터에서 열리는 강요배 개인전 ‘금강산과 DMZ’ 전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중3 때도 미남이었던 강요배에게 “제가 기억나세요?”라고 물었다.

처음에 그는 웃기만 했다.

2-3분후 다시 만난 그는 내게 “나는 엷고 부드럽게 채색한 수채화를 그렸던 너의 그림과 함께 네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기자를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한 강 화백

 

그는 학생때부터 수재이면서 그림도 잘 그렸던 인물이다.

하지만 1년 정도 그림을 그리다가 미술부를 뛰쳐나온 기자를 아직도 기억한다는 것은 참 놀라운 기억력이었다.

하기야 당시 그림반에 함께 있었던 선배들 중에는 고영철, 고영훈, 박현준, 백광익, 강요배, 강법선 등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모두 대가가 된 작가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미술부 지도선생님은 양창보 선생이셨으니..

그런 연유로 강요배 화백의 이번 전시회는 기자에게도 큰 울림이 있었던 만남이었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와 포즈를 취한 강요배 화백

 

 

고향선후배 관계인 강요배와 강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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