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마을 사람 전체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관장..도련1동 도련드르당밧개당(본향당)
상태바
[향토문화]마을 사람 전체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관장..도련1동 도련드르당밧개당(본향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6.19 0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도련1동 도련드르당밧개당(본향당)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련1동 1528-2. 마을 운동장 옆 작은 동산, 속칭 당밧
건립시기/연도 ; 미상(조선시대 추정)
유형 ; 민속신앙
면적 ; 제장 약 132㎡, 당 터 약 2,046㎡

 

 

 

도련1동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형성될 때 함께 세워졌을 것이나 지금은 많이 통합되거나 소멸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지역의 전체 신당 중 약 44%가 본향당으로 여전히 본향당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도련(道連)은 사면으로 모든 길이 이어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서, 도련1동은 예부터 오곡이 풍성하고 평온하여 인근 주민들이 부러워 ‘도련드르’라 불렀다고 한다.

도련동 본향은 송당 본향에서 갈라져 나온 신당이라고도 하나, 마을 신앙민들은 당신에 대한 관념이 없이 ‘개당(해신당)’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당이 있는 곳이기에 ‘당밧’으로 불렸으며, 바닷가 마을이 아닌데도 ‘도련드르당밧개당’이라고 불리는 것은 제일이 술일(戌日)인 신당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도련동 본향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며, 재일교포 고희수가 당 옆의 밭 2,046㎡를 희사하여 1991년 봄 동민 일동이 신당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도련동 본향은 신목형, 제단형 본향당의 형태를 띤다. 도련동 본향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350년과 수령 300년인 푸조나무가 있는데 이를 신목으로 삼고 있으며, 그 아래에 돌담을 둘러 제단을 마련하였다.


마을 신앙민들은 정초에 과세문안(過歲問安)을 하며, 도련동 본향을 정성스럽게 정비하고 있다. 제일은 술일(戌日)에 택일하여 지내며, 정초 마을 이사제가 끝나면 마을 신앙민들은 각자 생기에 맞는 날을 택일하여 신당에 다닌다.


1991년 신당을 정비하면서 세운 본향당 비 앞면에는 ‘도련1동 본향당’이라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우리 마을의 제당 터는 동네가 열린 이래 700년째이다.

마을의 형국이 게의 형상을 이루었는데 태평하고 편안함은 오직 밝은 신령 때문이다. 지금 이제 다시 신당을 수리하니 특히 은혜로운 광명을 드리워 길이 후손이 번영키를 바라노라.(吾鄕堂基 開鄕七百 局成蟹形 鄕泰民寧 恭惟明靈 今此更修 特垂恩光 永願後榮)’고 새겨져 있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자 하순애)


신목인 푸조나무는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수령 500살인 나무가 고사되면서 그 뿌리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350살로 추정되는 '형님 나무'의 높이는 12m, 가슴 높이 둘레 3.8m. 300살 먹은 '아우 나무'는 12m 키에 가슴 높이 둘레가 2.6m로 '형님과 아우'가 서로 가지를 의지하며 의좋게 서 있다.


20여 년 전 ‘매인 심방’(전담 무당)이 있을때만 해도 쌀점을 치며 마을 대소사에 대한 길흉화복을 점치고 주민들의 무병장수와 무사안녕을 비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마을 본향당으로서의 위엄은 현재도 엄연히 살아있다.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나 회의, 마을 잔치가 열릴때면 주민들은 우선 나무앞에 마련된 제단에 음식을 올리고 마을을 보살펴 준데 대한 고마움의 예를 올린다.

나무는 이처럼 과거에는 물론 현재 주민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양기옥씨(68)는 “풍수상 이곳 지형이 푸조나무를 중심으로 깅이(게)가 다리를 벌리고 마을을 둘러싼 형태라 하여 깅이당이라고도 부른다”고 설명했다.

양씨는 또 “결혼이나 취업 문제 등 집안에 일이 있어 마음이 심란할 때 당나무를 찾아 마음의 위로를 얻고 해답을 찾았다”며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당나무를 정신적인 지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제주일보 2006년 5월 11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