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함덕 쪽에서 북촌리 해동 해안절벽.. 북촌리 서우봉카이텐특공정격납고
상태바
[향토문화]함덕 쪽에서 북촌리 해동 해안절벽.. 북촌리 서우봉카이텐특공정격납고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7.01 0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곳으로 미군이 상륙할 것으로 예상하여 전진거점기지로서 해안 요새 구축

북촌리 서우봉카이텐특공정격납고

 

위치 ; 조천읍 북촌리 2664-1번지 일대. 서우봉 북쪽 해안
시대 ; 일본강점기
유형 ; 방어유적(특공정격납고)

 

일본군카이텐특공정격납고 日本軍回天特攻艇格納庫


함덕해수욕장 동쪽에는 완만한 등성이가 크게 두 개의 봉우리를 이루며 바다로 흘러드는 오름이 있다.

이 오름은 서모봉 또는 서우봉(犀牛峰)으로 일컬어진다. 이 중 남쪽 봉우리는 남서모, 봉수대가 있었던 북쪽의 봉우리는 망오름으로 구분된다.

서우봉 꼭대기는 함덕리와 북촌리를 행정구역으로 나누는 경계선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이 경계선을 따라 바다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급경사의 북서면 낭떠러지 기슭에 일본군이 파놓은 굴들이 그 잔해를 드러낸다.

이곳으로 미군이 상륙할 것으로 예상하여 전진거점기지로서 해안 요새를 구축했던 것이다.


해안으로 내려가면 3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카이텐격납고들이 바다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이 굴들은 해안 암벽을 뚫어내어 만들었다. 성산 일출봉이나 송악산·수월봉 등과 같은 응회암층이 아닌 순수한 암벽을 뚫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곳 굴 파기 작업에 동원됐던 노무자들의 고초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함덕 쪽에서 북촌리 해동 해안에 이르는 절벽의 동굴을 모두 19개가 확인됐다.


이곳 해안동굴들은 암벽을 깎아 직사각형 모양의 입구를 갖추고 있다. 길이는 3.5~6m 정도이다. 바닷가에는 어뢰정 발진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레일이 두 개 깔려 있어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낸다. (제민일보, 4328. 8. 24. "제주의 일군진지")

필자의 답사 때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북촌리 홍순식씨는 당시 일본군은 북촌 해동 주민들을 본동으로 소개시킨 뒤 굴 파기 공사를 벌였다고 증언한다.

이 곳 굴 파기 공사에는 경상도에서 징용당한 노무자 200-300여 인이 1944년말부터 동원됐다. 이들은 해안에서 함바집을 짓고 생활했다. 공사 기간은 10개월 정도였는데 완공을 보지 못하고 패망했다.


당시 공사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데 그 까닭은 당시 해동 주민들이 다른 마을로 소개됐었고, 비록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4·3 때 북촌 주민들 상당수가 희생되어 버린 때문이다.

다만 일본군이 물러간 뒤 해동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왔으나 집에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고 하니 일본군이 마을을 숙소로 사용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진지동굴 공사에 강제 동원됐던 유일한 생존자는 북촌리 김진국씨(2001년 75세)이다.

"열여덟살 때 다려도 근처에서 43명이 테우를 타고 낚시질을 하다 일본군에 끌려가 하루 세 끼 주먹밥을 먹으며 하루 10시간씩 진지공사에 동원되었다. 당시 3개동(饍, 中洞, 광석동)의 마을 책임자였던 윤병관, 이자룡, 홍순화씨가 매일 쫓아다니며 풀어달라고 애원해 일주일간 흙을 나르다 가까스로 풀려났다."고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