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일본군 전진거점진지..화북1동 별도봉갱도진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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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일본군 전진거점진지..화북1동 별도봉갱도진지②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7.0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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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송이층에 갱도 11곳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화북1동 별도봉갱도진지②

 

위치 ; 화북1동 4757-1번지. 별도봉 남동쪽 기슭 산책로 하단
유형 ; 방어유적(갱도진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은 별도봉(別刀峰, 표고 136m)에 많은 갱도진지를 구축했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송이층에 갱도 11곳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길이 10m~25m 안팎의 이 갱도들은 모두 일자형으로 뚫려있다. 갱도 입구는 통나무 등으로 막혀있는 상태다.

또 이곳에는 산책로 하단부에 7개의 갱도진지와 산책로 상단 별도봉 7부 능선 지점에 3개의 갱도가 있다. 모두 22곳 정도 밀집해서 구축된 것이다.

그만큼 일본군이 별도봉을 주요한 전략지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일본군이 남긴 「제58군배비개견도」 등에는 '전진거점진지'로 표시돼 있다.


하지만 일본군은 갱도를 완성시켜 놓고 실제 이용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김용두씨(1929년 생·제주시 화북1동 4047-2)는 화북동 곤흘마을이 고향이다.

동시대 사람들이 그렇듯이 김씨 역시 1945년 일본군의 갱도진지 구축에 「근로봉사대」로 강제동원돼 사라봉과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노역에 시달렸다. 김씨에 따르면 별도봉의 굴(갱도)은 보급물자 저장용으로 구축됐다.


"별도봉 산책로를 따라 만들어진 위·아래 굴을 따라 갱목 등을 실은 트럭이 한바퀴 돌아나갔습니다. 갱도 안에는 갱목과 널판지로 마무리됐었습니다."


김씨는 일제 패전 후 현장에 가서 갱도 내부의 갱목들을 직접 가져오기도 했다. 갱목은 직경 40~50cm 정도, 옹이가 하나도 없는 미끈한 미송(美松)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당시 갱목이 한 아름 됐습니다. 전쟁이 끝나니까 지주들이 권한을 가져서 없는 사람들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갱목은 제재해서 집을 짓기도 하고 땔나무로 이용되기도 했죠. 곤흘동에서도 그 나무로 집을 지었습니다. 지주들은 또 굴 하나에 얼마씩 받고 나무를 팔기도 했습니다."


사라봉에서는 징용된 한국사람들이 목괭이로 굴을 팠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사라봉에서 갱도공사를 하면서 파낸 흙을 날랐다.

그 때 사라봉에는 몇 군데 일본군의 포가 설치된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사라봉에는 포병부대가 주둔한 것으로 보인다.(한라일보 200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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