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내가 편안하게 사는 것은 하늘의 은덕'..건입동 김만덕객주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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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내가 편안하게 사는 것은 하늘의 은덕'..건입동 김만덕객주집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7.1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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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여 석을 모두 구호식량으로 기부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제주도 민중들을 구원하였다

건입동 김만덕객주집터
 

위치 ; 제주시 건입동 지장각길23 한국전력제주지사전자제어팀 건물 동쪽
시대 ; 조선
유형 ; 위인선현유적

 


굶주린 백성을 구제한 사회독지가로 이름을 날린 김만덕의 객주집터이다. 만덕은 어려서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관기의 집에서 자라 뛰어난 미모의 명기가 되었다.

뒤에 기적을 벗고 양인이 된 후에는 이곳에 객주(客主)를 차려 제주 특산물인 귤, 미역, 말총, 양태(갓의 재료)를 육지의 옷감, 장신구, 화장품과 교환하여 판매하는 상업에 종사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

이앙법(모내기)의 등장으로 농업기술이 발전하면서, 상업도 같이 발전한 18세기 조선의 시대 변화를 읽은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일약 거부가 되었지만 그녀는 '내가 편안하게 사는 것은 하늘의 은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검소하게 살았다.


1793년 제주도에서는 세 고을에서만 6백여 명이나 아사할 정도로 심각한 흉년이 계속되었다.

“흉년이 들어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만여 섬의 구호식량이 없으면 장차 제주 백성들이 다 굶어 죽을 것입니다.”라는 장계를 받자, 2만 섬의 구호식량을 보내지만, 그마저도 1795년 수송 선박 다섯 척이 침몰하면서 구호정책은 실패했다.

이때 만덕은 전 재산을 풀어 5백여 석의 쌀을 사왔는데, 이중 450여 석을 모두 구호식량으로 기부하여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제주도 민중들을 구원하였다.

이듬해인 1796년 만덕의 선행이 알려지자, 정조는 제주목사 이우현을 통해 만덕의 소원을 물어보는데, 만덕은 한양에서 궁궐을 보고, 금강산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만덕은 임금을 알현하고 금강산을 구경하는 특전을 얻었다. 만덕의 알현을 받은 정조가 “너는 한낱 여자의 몸으로 의기(義氣)를 내어 기아자 천백여 명을 구하였으니 기특하다.”라고 칭찬한 것을 보면 당시 만덕의 선행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수 있다.

대답을 들은 정조는 “관의 허락없이 제주도민은 섬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라는 규칙을 깨고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또한 내의원 의녀반수 벼슬을 제수하여 그녀의 선행에 대한 보답을 하였다.

표석은 이곳에 세워져 있지만 객주집터 복원 대상토지는 이보다 동쪽 100여m 지점에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복원예정지는 일제시대때만 해도 지적도를 보니 바다였다는 근거가 나와서 복원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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