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칠 문화칼럼)봄비 내리는 제주, 그리고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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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문화칼럼)봄비 내리는 제주, 그리고 꽃들
  • 강문칠 기자
  • 승인 2012.05.0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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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전 제주예총 회장, 음악평론가 .작곡가)

 


요즈음의 제주는 어디를 가든지 꽃들을 볼 수 있다. 개나리, 벚꽃, 목련은 이미 피었다가 졌고, 유채의 노란 시대도 끝나고 이제는 철쭉, 연산홍, 진달래가 한창이다. 꽃들이 즐비한 산과 들을 거닐다 보면 불현듯이 다가오는 가슴을 후비는 제주의 바람을 맞는다.


어디에서 불어오는 바람인지 모른 채, 바람을 일으키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길을 걷는다. 가던 길을 멈추고 멀리 시야에 보이는, 내 마음에 피어난 바람이 누군가를 향해 있는지 달려가는 곳을 쫒는다.

 


인생은 한번은 행복이었다가, 봄이라 해도, 오늘처럼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의 마음속은 마치 혈관을 흐르는 혈액처럼 생각들이 많아지는 날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따스한 봄바람이다가, 차가운 겨울의 찬바람, 마음 속에 언제나 내려앉는 가을의 아픈 바람들---


꽃들이 화사한 그 곁을 지나려니 괜히 내가 부끄러워지는 심정이다. 왜 이런 것일까? 조심스레 꽃들이 놀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 발짝 발을 옮길 때 마다, 마음도 괜한 신경을 쓰게 된다. 간혹 이미 시들어버린 꽃들 사이에 피어나는 새로운 꽃이 있어, 시선이 아프고 어지럽기도 하지만, 그러나 피어나기도 전에 어느 누군가는 먼저 피고 지는 것을 반복해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네 인생살이기에,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가 보다고 말한다.

 

꽃들의 색깔이 유난히도 강렬하고 화려해서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호사스러워서 어울리지 않는 색과 향기를 발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마치 절실한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처럼, 설래이는 마음으로, 고백도 하기도 전에 그 마음을 상대방에게 들킨 것처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지는 시간들이 속절없이 지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꽃들도 시들어가고, 그러나 또 다시 새로운 신세계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린다는 희망은 인간들 모두에게 유효한 것이다.


오늘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 산을 걸으면,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오늘이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내리는 봄비가 흐르는 시간이 되어, 내 가슴에도 그렇게 흐르는 꽃들과도 같은 신세가 되어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언젠가는 또 다시 피어날 이름 모를 꽃들처럼, 이산, 저산, 그리고 들판에 피고 지는 수많은 꽃들이 되어, 모든 이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추억의 꽃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봄비가 내리는 봄날, 꽃이 많아 꽃들에게 무관심한 제주.

 
허나 산을 가 보아라, 들을 걸어 보아라, 봄비가 내리지 않아도 꽃들은 온 천지에 가득하게, 양팔을 벌려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려 한다.


살면서 아픈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소망을 담고 피어나는 꽃들처럼, 간혹은 하늘을 쳐다 보며,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으련만, 나의 발자국 소리에, 산새가 후두득 놀라 날개 짓하며 외로움을 뒤로하고, 산속 깊은 꽃들 속으로 자꾸만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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