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저지오름 북쪽에 자리잡은 마을..저지리 하늬골마을터
상태바
[향토문화]저지오름 북쪽에 자리잡은 마을..저지리 하늬골마을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7.16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48년 12월 소개령에 따라 고산리 등지로 이주하였는데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았다

저지리 하늬골마을터
 

위치 ; 한경면 저지리 2014번지 일대. 파출소4거리에서 신창 방면으로 400여m 지점 부근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마을 터

 

 


저지오름 북쪽에 자리잡은 '하늬골'은 4·3 항쟁 당시 16호에 50여 명의 주민들이 농사와 목축으로 살고 있었는데 1948년 5월 13일 무장대의 습격으로 집이 모두 불타 버렸다.

주민들은 그 집터에 움막을 지어 살거나 피신을 하다 1948년 12월 소개령에 따라 고산리 등지로 이주하였는데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았다.(제주4·3유적Ⅰ 884∼885쪽)

하늬골에서 남쪽에 이어진 마을은 웃거리라 불렀다.


당시 마을의 중심이었던 이곳에 잃어 버린 마을 표석이 세워졌다. 옛 집터들은 모두 농경지로 바뀌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없어졌으나 밭담을 따라 조금씩 남아 있는 대나무들이 옛집터임을 알려준다. 표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4·3사건으로 마을이 전소되어 잃어 버린 북제주군 한경면 저지리 하늬골 마을 터이다. 300여년 전 척박한 땅을 일구어내어 터를 잡아 농사를 지으며 살기 시작하였고, 동북 방면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하늬골'로 불리었다.


4·3 당시에는 김씨, 변씨 등 16호에 50여 명의 주민들이 자연과 더불어 농사를 지으며 평온하게 살아왔으나 이 마을에도 비극은 여지없이 몰아닥쳤다.


1948년 5월 13일 무장대의 습격으로 인해 마을의 가옥들은 모두 불에 타 버려 주민들은 그 터에 움막을 지어 살거나 피신을 했고, 같은 해 12월경에는 남아 있던 주민들마저 소개령에 의해 고산리 등지로 이주하였다.

그 후 재건 명령이 있었으나 이곳으로는 돌아오지 않고 저지리 남동쪽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함으로써 지금은 농경지로 변모하여 당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대숲들만이 옛날의 기억을 전하듯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을 뿐이다.


다시는 이 땅에 4·3사건과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이 표석을 세운다.
2003년 4월 3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 / 제주도지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