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속칭 '장왓굿'..저지리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입도조(이몽빈,이광빈)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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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속칭 '장왓굿'..저지리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입도조(이몽빈,이광빈) 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7.19 2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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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太宗의 둘째아들 孝寧大君의 8세손이며 제주목사 종형 箕賓을 따라왔다가 龍先達里 정착했다.

저지리 전주이씨효령대군파입도조(이몽빈,이광빈)
 

위치 ; 한경면 저지리 1870번지. 저지오름 동쪽
시대 ; 조선
유형 ; 묘

 


저지리에 있는 한경농협 맞은편(서쪽)으로 들어가는 농로(저지9길)로 들어가서 100m 채 못 간 지점에 있는 밭 속칭 '장왓굿'이라고 하는 곳에 全州李氏의 입도조인 李夢賓(혹은 光賓)의 무덤이 있다.


조선조 太宗의 둘째아들 孝寧大君의 8세손이며, 통훈대부 행수안군수(通訓大夫行遂安郡守) 이노(李櫓)의 아들 夢賓은 1610년 2월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종형 箕賓을 따라왔다가 龍先達里에 정착했다.


1611년 8월 중순 제주목사 李箕賓(이기빈, 1563~1625)과 판관 文希賢(문희현)은 산지천 하류에 폭풍으로 밀려오는 대형 무역선을 습격하여 배에 타고 있던 일본인, 중국인, 유구(琉球․류큐, 오늘날의 오키나와)인 등 200여명을 몰살해 버린다.

이들은 재물을 빼앗고, 왜구를 소탕했다고 조정에 거짓 보고를 했다.

훗날 사헌부에서 조사를 받게 돼 이기빈은 북청에, 문희현은 북도에 유배됐다.


이 사건이 일어나는 즈음 동생 夢賓 일가가 종적을 감추고, 한경면 저지리 용선달리 지경으로 들어와서 정착을 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비문 앞 ; 嘉善大夫李公夢賓之墓 配貞夫人密陽朴氏右祔


가운데가 이몽빈 부부묘 맨 앞줄이 이몽빈의 아들과 며느리의 묘이다.

묘의 뒤편에는 朝奉大夫李公櫟 配令人坡平尹氏 配令人晉州姜氏 之位라는 일종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부모의 묘가 고양군 선영에 있으나 표시가 불명하여 찾을 수 없으므로 단을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작성 100222, 보완 1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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