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산천단, 일제말 일본군 집단 주둔.. 오등동 서삼봉 산지천계곡갱도진지
상태바
[향토문화]산천단, 일제말 일본군 집단 주둔.. 오등동 서삼봉 산지천계곡갱도진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07.29 0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유격전에 대비하여 판 진지동굴이다.

오등동 서삼봉 산지천계곡갱도진지

 

위치 ; 제주시 오등동 산182-8번지(하천 번지임). 서삼봉과 소산오름 사이로 흐르는 계곡. 제1산록도로(탐라교육원 가는 길) 2009년 경 새로 조성된 펜션 북쪽 산지천 계곡. 아라동 산36번지 서남쪽 방향 오등동 산 49-2번지 일대이다.
유형 ; 방어유적
시대 ; 일제강점기

아라1동_소산오름 산지천갱도진지 내부 물고임.

 

아라1동_소산오름 산지천갱도 진지입구안.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유격전에 대비하여 판 진지동굴이다.

아라1동 삼의양오름 서쪽 탐라교육원으로 가는 길(제1산록도로)에서 신비의 도로라 하여 옆으로 만든 우회도로 서쪽 밭 안에 고인돌이 있는데, 그 고인돌에서 100여 미터 서쪽은 계곡이다.

오등동과 아라1동을 나누는 이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계곡의 양쪽 절벽에 진지동굴들이 있다. 앞의 갱도진지①에서 길 하나를 건너 불과 수백m 거리에 있다.

이 동굴들은 일본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군에게 몰리는 상황에서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한 작전인 <결7호작전>에 따라 판 것이다.

미군이 제주도에 상륙했을 때 이런 굴 속에 숨어 지내면서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계획이 바로 <결7호 작전>(1945년 2월 9일 시행)의 일부이다. 이 때 제주도민들을 산으로 끌고 들어가 총알받이로 삼으려고 했음은 물론이다.


산지천 상류 지점인 산천단 일대는 일제말 일본군이 집단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져 온 곳이며, 당시 일제 방어진지로써 대규모 진지동굴이 구축됐던 것으로 향토사학자, 동굴전문가, 주민들의 증언에 의해 전해져 왔다.

화북천과 산지천에 구축된 진지동굴이 상호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지동굴은 하천을 따라 1백여m 간격으로 구축돼 있으며 규모가 작은 것은 20m쯤 파 들어가다 중단된 것도 있다.

산지천에서 확인한 진지동굴 무리 중 규모가 큰 것은 폭과 높이가 1.5∼2m로 주 통로 길이가 1백50여m나 되는데, 구축상태가 매우 복잡한 미로형이다.

주 통로 양쪽 10여 곳에는 길이 2∼7m 규모로 방(室) 구조의 굴도 구축됐다. 굴 천정에는 박쥐가 대량 서식하고 있다.(한라일보 2002년 4월 17일)


진지동굴의 입구는 대부분 빗물 등에 의하여 위에서 떨어져 쌓인 흙으로 메워져 매우 작게 보이거나 멀리서는 구분하기 힘든 상태이며 들어가 보기도 쉽지는 않다.

필자가 답사한 것 중 하나는 비가 많이 온 뒤라 그런지 입구에서 10여m쯤부터 바닥에 물이 고여서 답사를 중단하기도 했다.(2010년 3월 7일 답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